전시장에 흙이 한가득 들어찼다. 전시장 한복판에 황토벽으로 둘러쳐진 흙집과 줄지어 선 두툼한 황토벽이 들어섰다. 8년 만에 전시장으로 돌아온 미술가 임옥상(61)의 작품들이다. 그간 상암 월드컵 하늘공원, 서울대미술관 기념 조형물, 청계천 전태일 기념 조형물,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등 공공미술에 몰두해온 작가는 "대중과 소통하며 숨가쁘게 지내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은 부족했던 것 같다"며 "내 작품의 근원이 됐던 땅, 특히 자연 그대로의 흙의 정신으로 돌아가보고 싶었다"고 전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예술적 창작을 위해 인간이 물감 이전부터 선택했던 재료인 흙이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 등 근원적인 가치를 표현할 유일한 재료라고 봤다.
자연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흙을 다뤘다. '흙-블랙박스'연작은 흙으로 만든 작은 집이다. 흙을 다져 만든 뒤 작가의 생각을 담은 그림과 글을 새겨 넣었다. 2m에 가까운 높은 흙벽을 다져 부조 형태로 인물을 그려 넣은 '흙 살' 시리즈도 함께 내놓았다. 그는 "흙에서 땅의 분단이 비롯됐고 부동산과 빈부 격차도 생겨났다"며 "시대의 사회학적, 정치적, 역사적 모순에 대한 질문과 답도 흙에 모두 들어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흙 외에 물, 불, 철, 살 등을 다룬 작품 4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 진한 분홍색 물에 잠긴 광화문 광장을 그린 '광화문 연가'는 역사적 배경과 월드컵 응원전, 촛불집회 등 광장의 의미가 강한 공간을 작가가 도발적이고 삐딱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밖에 가습공기청정기의 수명이 다한 필터 등을 이용해 용을 만든 '벤타에코미르' 등도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다.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했지만 모두 생명과 죽음의 속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모두 흙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시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8일까지 열린다. (02)720-1020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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