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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재계의 리더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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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재계의 리더 재현?

입력
2011.09.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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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재계서열 1위는 현대그룹이었다. 현대 삼성 LG 대우 SK가 '빅5'를 형성한 구도였지만, 자산규모로 따지는 재계랭킹의 수위는 줄곧 현대그룹 차지였다. 재계의 리더 역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하지만 고 정 명예회장 사망 이후 현대그룹이 해체되고, 대우그룹마저 공중분해 되면서 재계엔 사실상 삼성만 남게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자분야의 대약진을 발판으로 삼성은 외형으로나 내용면에서나 타 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모든 그룹이, 재계 전체가 삼성만 쳐다보고 이건희 회장만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히 사회적 현안이 되는 사안에 대해선 일단 삼성이 하는 걸 보고 결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같은 재계의 구도와 정서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그룹의 독자 행보다. 특히 민감한 현안에 대한 대처가 눈에 띄게 빨라지면서, 오히려 재계 전체의 분위기를 현대차가 선도하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단 삼성의 움직임을 지켜본 뒤 결정하던 과거 패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를 통해 '공생발전' 어젠다를 제시한 뒤 재계가 이에 화답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 정 회장은 이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회동을 사흘 앞두고 5,000억원에 달하는 개인재산 기부를 전격 발표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충분한 교육 기회를 부여해 사회적 계층 이동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재계의 한 소식통은 "과거였다면 사재 출연 문제도 일단 삼성의 행보를 지켜본 다음 결정했을 것"이라며 "정 회장이 먼저 치고 나간 사실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정 회장의 통 큰 기부는 결과적으로 본인과 현대차그룹의 이미지, 그리고 대정부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 회장의 사재 출연 발표 다음날 '공생발전 시리즈 2탄' 격으로 1조1,500억원 규모의 납품대금 조기집행계획을 내놓았다. 금액도 예년보다 크게 늘렸는데, 이 역시 정 회장이 직접 '통 큰 지원'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매년 명절을 앞두고 나오는 조치이긴 하지만 재계는 현대차 그룹이 모든 재벌그룹을 통틀어 가장 먼저 발표했다는 데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정 회장의 이 같은 적극적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실적에 대한 자신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일본 업체들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도 있지만, 현대ㆍ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급상승하면서 미국 중국 유럽 등 전 세계 주요시장에서 점유율이 날로 상승하는 것 명백한 사실. 계열 상장사들만 놓고 보면 상반기 순익에서 삼성을 앞질렀을 정도다. 여기에 항상 발목을 잡았던 노사문제도 2년째 무분규 협상타결을 이뤄냈고, 올 초엔 현대그룹 정통성을 상징하는 현대건설 인수까지 성공하는 등 현대차그룹은 현재 창사 이래 최고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처럼 여건이 무르익고 경영 기반이 탄탄해진 만큼 정 회장이 이젠 범 현대가의 장자로서 부친(고 정 명예회장)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재계는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측은 "재계 리더로서 삼성을 의식하거나 경쟁관계로 생각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대기업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독보적 리더로서 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던 삼성도 현대차의 부상이 나쁠 것 없다는 분위기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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