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다. 짙은 회색 배경으로 빨려들 듯한 한 사람의 구부정한 등만 도드라졌다. 그는 잡동사니 가득한 카트를 힘겹게 밀고 있다('소유(Besitz)'). 역시 검은 배경에 파묻힐 듯 앉아있는 사람들. 등지고 앉았거나 고개를 떨궈 표정은 알 수 없으나, 몸짓들에 음울함이 짙게 배어난다('테이블에 둘러앉은 다섯 남자').
현대인의 상실감과 우울, 소외 등을 화폭에 담아온 독일 현대미술의 대표화가 팀 아이텔(40)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2일 개막한 '더 플레이스홀더스(The Placeholders)'는 그가 아시아에서 여는 첫 전시다.
아이텔은 구상회화의 전통에 기반한 '뉴 라이프치히' 화파이지만 추상과의 접목, 소재와 표현방법 등의 다양화를 추구하며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고독과 소외, 슬픔과 가난 등은 전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면서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그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한국 관객들도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작은 회고전에 가깝다. '경기장'(2001) 등 초기작부터 '무제(관찰자)'(2011) 등 최근작까지 총 16점이 선보인다. 가로, 세로 20㎝ 안팎의 소품과 2m가 넘는 대형 작품이 섞여 있다. 작가는 "크기가 작으면 관객은 화면 속 인물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작품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고, 큰 작품은 작품 속 공간이 확장돼 관객과 작품 속 인물이 같은 상황에 놓이며 공감을 이끈다"고 설명했다.
지친 노숙자, 무기력한 청년, 낙담한 노동자, 방황하는 이들의 흔적을 그린 아이텔의 작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다양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스케치 삼아 인물을 재구성하는데, 배경이나 인물의 표정은 모두 알아볼 수 없게 한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작품 속 인물이 되어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넓혀주고 싶기 때문"이란다.
철학을 전공한 작가는 "철학이 수동적인 느낌이라면 그림은 좀더 능동적이라는 생각 끝에 그림을 그리게 됐다"며 "현대사회에서 깨질 듯한 약한 존재들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한다"고 했다. 내달 23일까지 (02)720-1524.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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