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에게. 리비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지부를 만드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서 매우 기뻐. 3월 20일 트리폴리에 도착하도록 요원 2명을 보낼 준비는 해놨어. 최근 우리가 송환한 테러리스트를 심문하는 데 우리도 참여하길 원해. 상세한 건 XXX가 다시 얘기할거야. 스티브.”
2004년 당시 스티브 캡스 CIA 부국장이 리비아 정보기관 수장인 무사 쿠사 전 리비아 외무장관에게 보낸 서신이다. 이들은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밀했으며 CIA와 영국 정보기관 MI6가 카다피 정권과 놀라울 정도로 깊고 은밀한 관계였다고 CNN 등 외신이 4일 보도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트리폴리의 쿠사 사무실에서 발견한 문건에 CIA와 MI6가 고문으로 악명 높은 리비아에 테러용의자를 넘겼고, 반카다피 성향 해외 망명자의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알카에다 관련 정보를 얻었다는 기록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들 문건을 근거로 미국이 리비아에 최소 8회 테러 용의자를 보냈는데 이는 2003, 2004년 사이에 집중됐다고 보도했다. HRW 관계자는 “문건들은 CIA가 체포해 리비아로 보낸 테러 용의자들이 리비아 당국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2004~2006년 CIA 국장을 지낸 포터 고스는 쿠사와 크리스마스에 오렌지 선물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웠다.
리비아도 무장단체 지도자 아부 압둘라 알 사디크를 포함한 반체제 인사에 대한 정보를 미국, 영국의 정보기관에서 얻었다. 알 사디크는 리비아 이슬람 투쟁그룹(LIFG)의 전 지도자이자 현재 반카다피 시민군 사령관으로 활동 중인 압델 하킴 벨하지의 가명이다. CIA는 2004년 벨하지와 임신한 부인을 말레이시아에서 체포해 트리폴리로 보냈다. 그는 지난해까지 아부 살림 교도소에 수감돼있다가 알카에다와 지하드(성전) 철학을 비난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고 CNN은 전했다.
MI6는 벨하지의 리비아 소환을 축하하는 메모를 보내고, 2004년 카다피가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하는 연설을 할 때 연설문 작성에 도움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2004년 카다피와의 회담장으로 베두인 텐트를 제안했는데 기자들이 이를 좋아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선데이타임스는 영국 정부의 대테러 자문역 로빈 시어비가 2006년 카다피의 막내아들 카미스와 3남 사디에게 영국 육군공수특전단(SAS) 견학을 제안하는 초청장을 비밀리에 보냈다고 전했다. 당시 블레어 전 총리는 런던 정경대에 재학중인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의 논문에 대한 조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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