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 25만여건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주한 미국 대사관이 한반도 정세 등을 보고한 내용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한미 양국이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상당한 온도 차를 보였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키리크스는 이날 외교전문을 편집하지 않은 채 공개해 정보 제공자의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등 위키리크스와 협력해온 언론들까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한미, 대북정책 곳곳 불협화음
2006년 7월 5일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쏘아 올린 사건을 계기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한국 정부에 대북압박 정책을 주문했다.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며칠 뒤로 예정돼 있던 남북 장관급 회담과 관련해 "예정대로 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며 연기를 요청했지만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유지하던 참여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북 장관급 회담은 예정대로 7월 11일 열렸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한 그 해 10월, 한미는 금강산 관광 중단과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문제로 다시 얼굴을 붉혔다. 당시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 정부에 금강산 관광 중단과 PSI 전면 참여를 압박했지만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는 게 외교전문의 설명이다.
북한 급변사태 논의에서도 양측은 시각차를 보였다.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이 나온 뒤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한국 정부와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본국에 건의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대북 포용정책을 편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급변사태에 대한 한국 내부의 논의와 한미간 논의를 금지했다"며 "그러나 이 문제가 더는 금기가 아니다"고 평가했다.
아프간 납치-이라크 파병 연계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샘물교회 교인 납치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탈레반과의 협상을 묵인해 준 대가로 한국 정부가 그 해 이라크 주둔 연장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7년 8월 27일자 외교전문에는 당시 한국 정부가 '테러세력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미국을 이해시키려 적극적으로 노력한 정황이 있다. 앞서 8월 4일과 7일 전문에는 아프간 정부가 한국인의 희생 위험을 무릅쓴 채 구출작전에 나서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미국 측에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납치 피해자 중 탈레반에 사살된 2명을 제외한 21명이 모두 풀려난 다음 날인 8월 31일자 전문에는 미국 측이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을 예상하는 내용이 나온다.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이 이라크 파병을 1년 연장하는 것을 호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썼다. 그 해 10월 정부는 자이툰 부대 철수 시한을 2008년 말로 늦추기로 했다. 결국 납치사건 해결 후 한국 정부가 미국의 바람대로 이라크 파병을 연장키로 한 것은 두 사건의 연계 가능성을 추론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정일, 외교부 주도 대북정책에 불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강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주한 미 대사관이 2009년 8월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같은 달 16일 방북 중이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가 대북정책을 주도하는데 불만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 어려움의 주원인은 남북간 신뢰부족"이라며 "과거 북한 문제를 다뤄 온 통일부가 북한을 이해하지 않는 외교부에게 (대북정책)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개성공단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현 회장에게 이명박 정부가 개성공단의 잠재력을 왜 인정하지 않는지, 한국 대기업이 왜 개성공단에 투자하는데 관심이 없는지 궁금해하고 이유를 물었다고 외교전문은 밝혔다.
또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우리는 모두 위대한 지도자의 자녀"라고 동질감을 표현하며 "선친들이 서명한 7ㆍ4 공동성명을 이행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이는 박 전 대표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가 2008년 11월 나눈 대화를 다룬 외교전문에서 등장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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