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다.' '인서울(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대단.'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는 지방과 서울의 교육격차가 매우 크다는 듯 이런 속언들이 돌아다닌다. 서울 안에서는 또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 등 대학을 일렬로 줄 세우고 이 통념에 기초해 사람을 뽑고 평가한다. 대학이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대학 입학 점수로 모든 대학평가가 끝나버리는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대학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 이 어리석은 통념에 한방을 날려주는 쾌거가 청주에서 일어나고 있다. 독일에서 주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대회 레드닷이 이달초 수상작을 발표했는데 청주대 학생 작품 세 점이 포함됐다. 청주대 학생들은 2008년부터 매년 이 대회에서 수상자를 배출하는 한편 독일이 주최하는 또다른 대회 iF, 미국의 IDEA 등 손꼽히는 국제공모전에서도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가 작년에 의욕적으로 연 서울국제자전거디자인공모전에서도 그랑프리는 이탈리아인이 받았지만 금상과 은상은 청주대 학생들이 차지했다. 인구 66만명(8월말 기준 청주시 집계)의 작은 도시에 있는 지방대가 어떻게 이런 저력을 갖게 되었을까. 이들을 지도해온 청주대 산업디자인과 김동하(42)교수를 만나봤다.
_어떤 작품들이 상을 받았습니까?
"올해 레드닷 베스트오브베스트 상을 받은 접이식 들것은 배낭처럼 메고 다니다가 위험상황에 닥친 사람을 보면 펼쳐서 들것으로 쓰는 것인데 바퀴가 달려있어 혼자서도 구조할 수 있습니다. 팔걸이를 잡아당기면 선반이 앞으로 튀어나와 혼자서도 침대로 옮길 수 있는 자립휠체어와 새총카메라가 레드닷 위너 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2월에 발표한 iF 공모전에서 차량사고를 알리는 삼각대로도 활용할 수 있는 휴대용 경광등이 위너상을 받았습니다. 2010년에는 서울국제디자인공모전에서 가위처럼 접히는 자전거가 금상을, 짐 싣는 주머니 크기를 조절하면서 삼륜이나 이륜으로 바꿀 수 있는 자전거가 은상을 받았습니다. 2009년에는 들것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로 안내 표시판이 레드닷 위너상을 받았고 2008년에는 개천에 설치하면 평소에는 수평으로 있다가 물이 넘치면 부력에 의해 수직으로 떠서 범람을 막아주는 수해방지벽이 IDEA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만드는 풍력발전기로 레드닷 위너상을 받았고요."
_어떤 게 제일 큰 상인가요?
"보통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와 비즈니스위크지가 공동 주관하는 IDEA,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iF, 독일 에센에서 열리는 레드닷을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이라고 합니다. 이중 IDEA는 8,000여점 중에서 선발한 것이고, 레드닷은 3,000여점 중에서 선발했습니다. 레드닷 안에서 이야기하면 위너를 각 10개 분야에 10점씩 선정하고 그 중 분야별로 2점씩 뽑아 베스트오브베스트를 주며 그 중 한 점이 그랑프리가 됩니다. 그동안 학생들이 위너에 머물렀는데 올해는 베스트오브베스트까지 올라갔습니다."
_베스트오브베스트 수상자가 중국인이네요.
"중국인인데 1학년부터 청주대에서 배운 우리 학생입니다. 이 학생은 올 봄에 열린 광저우국제가구박람회에서도 은상을 받아서 벌써 세계 6위의 중국 백색가전회사인 메이디에 취업이 확정됐습니다. 중국 명문대에서도 청주대로 유학오는 경우가 꽤 됩니다."
_국제공모전을 겨냥해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나요?
"아닙니다. 공모전에서 상을 타면 좋은 기업에 취직할 수 있지만 그걸 겨냥하고 기발한 것을 학생한테 자꾸 강조하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디자인 전반을 가르칩니다."
_청주대에서 남다른 성과를 보는 이유가 있다면?
"보통 학교들이 한 학기에 과제물 하나를 만든다면 저희는 두개씩 만듭니다. 그냥 아이디어가 아니라 필요한 기술을 찾아내서 상품화 단계 모형까지 제출하는 과제물을 학기마다 두개씩 제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제 전시회를 엽니다. 1, 2학년은 학기에 한번씩이지만 3, 4학년은 두번씩, 매년 네번입니다. 이게 전과목에서 이뤄지니까 정말 빡빡합니다. 수업시간에 완성을 다 못해서 꼭 '방과후 학습'을 해요. 어떨 때는 새벽 2시에도 안 끝나서 부모가 전화를 한 적도 있어요. 공모전에 나간 것이 모두 (김동하 교수의) '제품디자인'이라는 전공수업시간에 만들었던 과제들입니다. 과제전을 잘 활용해서 공모전에 내보내라는 이야기는 부임 초기부터 강조했습니다."
_왜요?
"지방대 학생들을 보면 그냥 지방대라는 이유로 주눅들어 있습니다. 올해도 신입생 워크숍을 했더니 어김없이 학생들이 손을 들고 이래요. '청주대 산업디자인과가 잘한다는 것은 알고 왔다. 그러나 지방대 아니냐.' 제가 처음 강사로 강의를 맡은 2003년에는 더했어요. 2005년 9월에 정식 교수로 임용이 되자 학생들의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자신감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공모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것은 외부 평판이 나빠서이기도 하지만 실력이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공모전에 내려면 실력을 쌓아야 하고 실력이 쌓여서 공모전에 당선이 되면 자신감이 생길 뿐 아니라 평판도 좋아지니까요. 처음 강단에 서보니 졸업전시회 작품이 다른 학교의 과제전보다 못해요. 이래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생각해서 무조건 빡빡하게 학점 관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지각 결석 과제물 제출마감 같은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과제물 진전 상황을 매주 체크합니다. 도널드 노먼의 책 를 필독서로 지정해 영어로 읽게 하는데 진짜 읽고 있는지도 점검합니다."
_디자인은 예술이기도 한데 좀더 자유스러운 게 더 성과가 좋은 것 아닌가요?
"MIT대 교수인 덴 애리얼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동안 창의성 실험을 한 내용이 이라는 책에 나옵니다. 학기 내내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과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자유분방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창의성 발휘에 나은가를 알아봤더니 계속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높았고 자유분방이 꼴찌였습니다."
_국제공모전으로 성과가 나타났으니 다행이지만 그 전에는 학생들이 불만도 많았을텐데.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교수가 열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네들의 과제에 자기네만큼의 열정을 갖고 있구나 생각하면 힘들어도 미안해서라도 쫓아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만시간의 법칙'도 제가 학생들한테 강조하는 것인데, 뭐든 숙련된 수준에 이르려면 1만시간이라는 절대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열두 시간쯤 매달려야 이게 나와요."
_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물을 하나요? 동일한 제품?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기업에서 산학협력 제의를 받아서 공기청정기를 한 적은 있지만 대부분 주제를 줍니다. '지속가능한 발전' '유니버설 디자인' '굿디자인' 등을 주제로 주니까 굉장히 다양한 제품들이 나옵니다."
_학생마다 다 다른 제품을 구상한다는 말이네요.
"네, 45명 정원인데, 군대 가고 어쩌면 35명 전후가 배우는데 같은 제품은 없지요. 있어도 바꾸도록 조정을 하니까."
_3, 4학년 전공을 맡으면 거의 70개 프로젝트를 일일이 다 관여한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한가요?
"(웃음) 동일 과제를 내주면 교수는 편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배우는 게 적어요. 디자인이란 문제를 찾아내서 개선책을 풀어나가는 것이자, 새로운 것을 실천해서 상업적 성공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또한 디자인 행위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수익을 창출하는 일련의 행위를 다 포함합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문제를 디자이너가 찾아내는 것부터가 디자인인데 똑같은 과제를 교수가 제시한다면 물건을 아름답게 만드는 법은 배워도 문제 자체를 찾는 방법은 배우지 못합니다."
_청주대가 모교지요?
"청주대를 나와 미국 아리조나주립대에서 석사를, 중앙대에서 박사를 했습니다."
_모교이기 때문에 더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것인가요?
"다른 데서도 그렇게 했으니까 그건 아니고요. 교수의 역할이 학생들을 독립적인 디자이너가 되게 하는 일이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실무를 맡기면 손색없이 해낼 스킬을 4년내에 익히게 하려면."
_학창시절에 공모전에 많이 참여했습니까? 국제공모전에도 당선된 적이 있나요?
"제가 그림 솜씨가 있을 뿐 디자인이 뭔지도 모르고 대학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실력을 키우기 위해 공모전에 엄청 많이 도전했습니다. 국제공모전에는 된 적이 없고, 2006년에야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여러 회 입상작가에게 부여하는 '추천디자이너'가 됐습니다. 그만큼 많이 도전하고 떨어졌다는 뜻이니까 제가 학생들한테도 낙담하지 말라고 제 경험을 많이 이야기해줍니다."
_제자들의 공모전 당선작들이 공익적인 게 눈에 띄는 데 이걸 강조하나요?
"아니요. 이 세상의 모든 제품은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걸 디자인에서는 합목적성이라고 부르는 데 그걸 가시화시키는 게 디자인입니다. 제품마다 합목적성이 다 다른데 공익성을 강조할 수는 없지요. 한 학기 16주 동안 2개 아이템을 하면 한 아이템을 하는데 8주가 걸려요. 8주 동안 디자인이 무엇인지 기계적 구조부터 작동원리, 형태미 등 다양한 측면을 배울 수 있는 규모와 디테일을 갖춘 아이템을 선정하게 하지요. 수업중 집에서 폐가전 한 개씩 가져와 뜯어보?해요. 구조를 철저하게 익히는 것이지요. 공모전에서 상을 탄 공익적 제품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과정에서 나온 구조적인 것들이에요. (공익적인 것만 아니라) 새총처럼 쏴서 상대가 놀라거나 웃는 모습을 찍는 새총카메라도 있어요."
_어찌 보면 도제를 키우는 스승 같네요.
"학교가 학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수가 학생을 만듭니다. 학생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잠재된 것을 끌어내주고…. 저는 학식이 엄청난 것도 아니고 커리어가 대단하지도 않아요. 어쩌면 중고등학교 선생님 같은지도 모르겠어요. 학생들이 실력을 인정받는 디자이너, 사회에 기여하는 디자이너가 되도록 선생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