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움 담뿍한 한국의 시골 마을은 참말 어여쁘다. 지붕 끝 살짝 말려 올라간 뾰족 기와집, 그 집들의 돌담 사이를 구비구비 헤엄치는 작은 마을길, 그리곤 저편엔 나즈막해 진정 아늑한 뒷산. 더 어여쁜 것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는, 희망이 되는 그런 삶을 흔쾌히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이 고귀한 것은 수천 년 이어 온 우리 격식과 품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귀하디 귀한 시골 마을들이 농촌 공동화 속에 하나하나 스러져 가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이 자신의 마을을 지키고 가꿔 한국인 아니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 명소로 만들도록 격려하기 위해 튼실한 전사들이 나섰다. 바로 지난달 16일 창립대회를 가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한아연)이다.
이들의 핵심 과제는 '아름다운 마을'의 선정. 마을이 전통 경관과 문화를 얼마나 알차게 보전하고 있는가, 지속적 발전을 위한 의지와 구조를 갖췄는가를 본다. 한아연은 창립대회에서 경남 산청군 단성면의 예담골을 제1호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했다. 예담골은 2013년 한방엑스포 개최 예정지여서 관광 수요의 측면에서 장점이 있고, 옛 기와집에 사람들이 살면서 제대로 관리하고 있으며,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이 선정의 이유가 됐다. 하지만 사실은 이재근 군수, 박우근 이장부터 모든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되면 한아연이 가입한 국제단체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회'(세아연)와 한아연의 홈페이지에 내용이 게재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을이 되는 셈. 한아연은 한국 공식 여행 가이드 책자에도 마을이 실릴 수 있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와 협의 중이다. 아름다운 마을로 가면 관광버스 요금을 깎아 주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내 사용 휴대폰에 대해 할인 혜택을 주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아름다운 마을 운동은 1982년 프랑스에서 시작돼 이탈리아 벨기에 캐나다 등으로 확산됐다. 2003년에는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美瑛) 마을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이 만들어졌다. 운동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네트워크를 유지해 오다 2010년 국제 조직인 세아연을 결성했다. 한아연도 세아연에 가입했다.
한아연의 출범은 재미 음식점 체인 업체인 ㈜스티븐스 회장 최미경(54)씨가 주도했다. 그는 의류 사업을 하는 재미동포 남성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1999년 현지에서 핫도그 체인 사업을 시작했다. 뉴욕핫도그&커피와 황후삼계탕 등 체인의 명성이 자자해지자 2003년에는 한국으로 역수출하기도 했다.
최씨의 핫도그는 한국혼이 잔뜩 녹아 있는 것이 특징. 핫도그 소시지 위에 불고기와 닭갈비를 토핑한 것이다. 최씨가 "가장 미국적인 핫도그와 가장 한국적인 불고기, 닭갈비가 만난 초유의 문화 교류"라고 말하는 이 실험에 미국인들은 열광했고, 지난 4월에는 전 세계인이 찾는 뉴욕 존F케네디국제공항에 매장을 여는 성공까지 거뒀다. "우리 맛을 세계화하는 작은 실천으로 조국애를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그러던 중 제안 하나를 받게 된다. 한국관광공사 관광서포터즈로 활동 중이던 그는 권성택 전 서포터즈 사무총장으로부터 "선진국에서 아름다운 마을 운동을 하는데, 한국은 이들과는 다른 독자적 전통이 있어 이 캠페인을 하면 관광객이 엄청 몰려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식 세계화 말고 한국에 대한 내 사랑을 실천할 다른 일이 없을까 하고 항상 고민해 왔는데 눈이 번쩍 뜨였어요." 최씨는 함께 서포터즈로 있던 스토리텔러 박미영(한아연 부회장)씨, 한화건설 이사 신철식(한아연 사무총장)씨에게 동참을 권유하고, 권씨도 "말에 책임을 져라"며 끌어들였다.
이들은 세아연을 통해 매뉴얼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 7월에는 임원진이 일본의 첫 아름다운 마을인 비에이마을을 방문, 공부하고 돌아왔다. "새마을운동이 생활환경 개선 운동이었다면 아름다운 마을 운동은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함께 숨쉬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 해도 될 겁니다.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최씨의 포부가 참으로 힘이 있어 보인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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