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자동차 대국이다. 국내 제조업체의 자동차 생산ㆍ판매뿐만 아니라 가구 당 자동차 보유 대수, 고속도로나 국도 등 간선도로 정비 실태 등으로 보아도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눈을 조금 옆으로 돌리면 180도 다른 모습이다. 당장 도로 포장만 보아도 고속도로나 국도는 100%에 가깝지만 지방도는 83%, 시ㆍ군도는 65%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도로가 전체 연장의 89%를 넘고, 관련 예산 대부분을 교부금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보니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추어 턱없이 잦은 교통사고는 자동차 대국의 면모를 더욱 일그러지게 한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2001년 8,900명에 서 지난해 5,500명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부상자는 38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주는 데 그쳤다. 문제는 이런 사상 사고의 83%가 지방관리 도로에서 빚어지고, 가장 민망한 통계인 고령자 사망사고의 대부분도 여기서 일어난다. 1차적 책임은 운전자에 있다. 속도를 조금만 줄여도 대형사고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운전자의 의식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을 시간 여유가 없다.
■ 경운기나 트랙터 길은 물론이고 보도조차 따로 없어 24시간 위험에 노출된 지방도를 개선하는 방안은 다 나와 있다. 2차선 도로 밖에 따로 농기계 이동로를 설치하거나 광폭 길어깨라도 군데군데 만들어 주는 것 등이다. 그리 어려울 것이 없지만 '예산 부족'에 발목이 단단히 잡혀 있다. 곧바로 도로구조 개선 공사에 나서는 대신 마냥 '(사망)사고 다발지역' 따위의 팻말을 세워두고 있는 현실이 다 그 때문이다. 그 동안 지방도 관리ㆍ개선에 쓰이던 연 8,900억원의 교부금마저 연말이면 일몰을 맞게 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가 떠맡더라도 총액 삭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해마다 교통사고로 많은 장애인이 만들어지고, 어린이ㆍ고령자 사망사고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도로안전은 토목 과제가 아닌 전체 국민 대상의 복지 과제로 여길 만하다. 복지 정책이라면 중앙정부가 맡아 지방에 실행만 위임할 수 있다. 나아가 연간 8조3,000억원에 이르는 사고 보상금의 일부만 도로안전에 투자해도 그만한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 도로에 사업의 사활이 걸린 자동차 제조업체의 관심과 기부는 사회적 책임의 출발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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