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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칼, 스테로이드, 원자력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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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칼, 스테로이드, 원자력 발전

입력
2011.09.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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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하게 모은 수백만 원을 저축이나 투자를 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명품 가방을 구입하며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선택이 '옳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개개인이 선택할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나라의 살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정해진 예산을 어디에 사용 하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공동체 구성원이 합의하여 결정한 것이라면 반대 입장에 섰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론에 따라야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원전 추가 건설 잊혀지고 있지만

이런 문제가 나라 살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추가건설 여부에 대한 찬반 문제도 국민들이 선택해야할 문제 중 하나다. 일본 동북지방의 초대형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미역 같은 해조류와 천일염 사재기 같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고 발생지인 일본에서 조차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서 중단했던 방사선량 측정과 수치 발표를 우리나라에서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검출된 극미량의 방사선량 수치를 보도하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극단적인 환경보호론자들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 발전의 중단을 주장하기도 했다.

피부과 전문의로 환자를 진료하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토피 피부염이나 지루성 피부염과 같은 만성적이고 재발하기 쉬운 피부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스테로이드제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환자 중에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때문에 사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과장되게 알려져서인지, 효능보다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테로이드의 사용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환자에게 스테로이드의 필요성과 안전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나는 주방용 칼을 스테로이드에 비유해 효용성과 위험성에 대해 설명한다. 칼을 주방에서 주부가 사용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위험한 흉기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칼을 잘못 만져 손을 다쳤다고 해서 주방에서 칼을 치워버릴 수는 없는 것처럼, 스테로이드로 인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유용한 피부 질환 치료제로서의 스테로이드 효능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원자력 에너지도 이런 양면성이 있다. 값싸고 효율적이며,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자체 기술력으로 만들어지는 원자로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수출을 통한 고용 창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화석연료를 사용한 화력발전에 비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극히 적으므로 지구 온난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인류가 전기의 편의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환경의 파괴는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파괴의 정도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되겠다.

양면성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원자력 전문가와 책임자들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절대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의무가 있다. 또 환경 보호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무시하지 말고 전문가들이 범할 수 있는 오류를 미리 지적하는 따끔한 충고라 생각하고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스테로이드 제제의 예측된 부작용은 전문의의 적절한 처방으로 피할 수 있듯이,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도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고 유형이라면 발생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익병 전 관동의대 교수·피부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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