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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대한민국 부촌 지도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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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대한민국 부촌 지도가 바뀐다

입력
2011.09.0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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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자, 그 중에서도 재계를 대표하는 재벌 총수들이 선호하는 동네는 어디일까.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 사생활 보호는 재벌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주거 조건이다. 하지만 강남ㆍ북 불균형 개발로 주거 환경이 양극화하면서 부촌 지도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대한민국 부촌(富村)의 역사는 1970년대 서울 성북동, 한남동에 재벌 1세대가 자리를 틀면서 시작됐다. 1980년대 수도권 개발이 남북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서울 강남권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부촌의 범위는 강남으로 확대됐다. 1990년대 일부 젊은 재벌이 교육 여건이 뛰어난 강남에 자리잡으면서 도곡ㆍ대치동을 '교육 부촌'으로 만들었고, 청담동 주변은 재벌가 자녀들이 분가하며 모여들기 시작해 '재벌3세촌'까지 형성했다.

삼성은 한남동, 현대는 성북동

재벌 총수들이 몰려 사는 전통적인 부촌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종로구 성북동. 한남동은 남산을 등지고 한강을 내려보는, 풍수지리에서 최고 명당으로 꼽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 입지가 돋보이는 곳이다. 성북동은 조선시대부터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기는 고관이나 부자들에게 어울리는 땅으로 알려져 왔다.

이런 풍수지리적 해석 외에도 재벌들이 자연스레 모여 살게 된 것은 군사정권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실제 한남동이 부촌 대열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1960년대부터. 군사정권 시절 군 출신 실세들이 과거 육군본부가 있던 서울 용산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정권과 가깝게 지내야 했던 재벌과 부유층이 대거 한남동 일대로 이주해 재벌1세대의 핵심 주거지가 됐다.

성북동 역시 60~70년대 군사정권 실세들의 집결지였다. 당시 정ㆍ관계 실력자들이 청와대에 가까운 성북동에 많이 모여 살자, 재벌가들도 하나 둘 모이면서 부촌이 형성됐다.

한남동의 경우 유엔빌리지를 중심으로 하는 한남1동과 하얏트호텔 부근의 한남2동, 길 건너 이태원동 주변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삼성ㆍLG 가문이 포진해 있다. 이 회장 집 뒤에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집이, 그 인근엔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집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역시 한남동 주민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도 모두 한남동 '이웃사촌'.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뒤늦게 한남동으로 전입했다.

재벌 2ㆍ3세대가 주로 자리잡은 한남동과는 달리 성북동은 재벌 1세대가 오랫동안 머물러 온 부촌이다. 이곳에 사는 재벌 및 중견기업인은 아직도 100여명에 달한다. 특히 삼성ㆍLG 가문이 한남동에 몰려있는 반면, 성북동에는 현대가 출신들이 많이 산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장남 정지선 회장, 차남 정교선 사장과 함께 살고 있으며,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그리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성북동 주민이다.

재벌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역시 보안이다. 한남동과 성북동 일대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과 영사관이 즐비해 삼엄한 경비가 이뤄진다는 점도 신변의 안전이나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재벌들의 주거 욕구를 만족하기에 충분하다.

남하(南下)하는 부촌

부촌도 강남 선호 흐름에선 예외가 아니다. 최근 들어 강북에 몰려 있던 부촌이 한강 이남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재벌닷컴이 30대 재벌그룹(자산 순위) 총수 일가 391명을 대상으로 주소 현황을 조사(올해 3월 기준)한 결과, 최근 5년간 71명의 주소가 바뀌었는데 이 중 44%(31명)가 서울 강남권으로 이주했다. 주로 결혼 등으로 분가한 재벌 3ㆍ4세들로, 강남구 도곡동이나 청담동으로 주소를 옮긴 경우가 많았다.

재벌 1ㆍ2세대가 대외 노출을 꺼려 대중교통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성북동이나 24시간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는 한남동을 주거지로 선호했다면, 해외 유학파가 많은 재벌 3ㆍ4세들의 강남행은 생활 편의성과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청담동은 성북동, 한남동에 이어 세 번째로 재벌가가 선호하는 지역이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정몽진 KCC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장남인 조원국 한진중공업 상무,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인 임세령씨 등이 이곳 주민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딸 장선윤 블리스 대표,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재벌가 딸들은 이 동네 빌딩을 사들여 패션ㆍ외식사업을 하고 있다.

도곡동은 타워팰리스 등 호화 주거시설이 들어서면서 2005년 12곳이던 재벌가 집이 올해 23곳으로 100%나 늘었다. 성북구 성북동에 살던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이 작년에 타워팰리스로 이사했고, 종로구 신문로2가에 살았던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도 도곡동에 합류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5월 신접살림을 차린 서판교 지역도 신흥부촌으로 떠올랐다. GS그룹, 한불화장품, 대한제분, 삼성전자 등의 최고경영자(CEO)가 줄줄이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교통 여건이 뛰어난데다 용적률과 인구밀도가 낮아 주거환경이 쾌적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10분이면 강남에 도착할 수 있는데다, 금토산, 운중천 등 자연환경이 쾌적해 전원형 생활을 즐기려는 재벌과 부유층이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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