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중소 정보통신(IT) 업체를 운영하는 양모(43) 대표는 열흘 앞으로 다가온 추석(12일)이 "두렵다"고 했다. 직원에게 조금이라도 보너스라도 챙겨줘야 할 텐데 "아무래도 올해는 힘들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원자재 값 때문에 원가가 올랐고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인건비는 2~3년 전과 비교해 30% 가까이 올랐지만 대기업들의 발주 단가는 여전히 제자리"라며 "심지어 한 대기업은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직원들을 파견 받아놓고 돈을 2달 이상 안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40)씨도 추석이 걱정이다. 다음 달 전세 만기를 앞두고 집 주인은 전세금을 3,000만원 올려달라고 하는데 마련한 길이 막막하다.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해보았지만 돌아온 건 "당분간 가계 대출은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는 대답뿐. 지금 내는 이자도 많이 올라 이미 버거운 상태다. 그는 "고향 갈 기분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민들과 중소기업 앞에 한겨울보다도 추운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전세난 속에 최근 대출 동결ㆍ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세입자들은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상황. 중소기업들 역시 원자재가격 인상에다 글로벌 경기 침체 조짐에 따른 판매 부진으로 고사 위기이다. 5%를 넘어선 고물가는 추석 선물 마련과 제사상 차리기도 버거운 형편이다. 공교롭게도 연중 최대 명절을 앞두고 서민ㆍ중소경제에 2고(고물가ㆍ고금리), 2난(전세난ㆍ자금난)의 한파가 불고 있는 상황이다.
남대문 시장 상인 이모(58)씨는 "재래시장 어려운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런 추석 대목은 없었던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물가 대책을 쏟아내고, 대기업은 협력업체 지원을 다짐하지만 대부분 서민ㆍ중소기업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양 대표는 "엊그제 정부가 추석을 맞아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19조원을 특별 자금으로 푼다고 했지만 지금껏 그런 혜택을 받아 본 적 없다"면서 "대기업들의 협력업체 지원도 2차, 3차 협력업체나 초대형기업 기업과 거래하지 않는 대다수 중소기업에겐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서민들과 중소기업들은 최대 자금 성수기인 추석을 앞두고 단행된 은행들의 대출 억제 방침에 더욱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게다가 부동산정보업체 (주)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전세 가격이 2년 만에 5,000만원 올랐다. 김 씨는 "기업들은 경기 부진으로 자금상황이 어렵고 서민들도 전세자금 마련에 애를 먹는데 대출을 까다롭게 하는 건 그냥 거리에 나앉으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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