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로 물가 잡을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시대적 물가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복잡한 유통구조와 독과점 개선 등 근본적인 수술은 외면한 채 맹탕 대책만 내놓고 있으니 물가가 폭등하는 건 당연하다."
정부가 그간 내놓은 물가 대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는 지난 1년간 물가를 잡기 위해 갖은 대책을 총동원했다지만, 전문가들은 공급을 일부 늘리고 가격을 통제하는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다며 낙제점을 주었다. 파탄 일보 직전의 서민경제를 구하려면 지금이라도 경제 패러다임을 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셌다.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대표적인 처방은 금리 인상인데, 통화당국이 고(高)성장에 집착하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 전문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과도하게 풀린 돈을 금리 인상으로 거둬들이지 않은 것이 물가 폭등의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실물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시점에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가계 빚이 최대치에 달했고 주요 국가들이 금리 동결로 가고 있는 마당에 금리를 올린다면 많은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통화당국의 안이한 물가 대응이 우리 경제를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다.
수출 경쟁력에 매달려 환율 하락을 용인해주는 시점을 늦춘 것도 대표적인 실기(失期) 정책으로 꼽힌다. 정진영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올해 들어 환율 하락을 용인했지만 물가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취해진 사후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사후약방문에 그쳤다는 얘기다.
최근 물가 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농축산물의 유통구조 개선과 통신, 석유 등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은 '선언뿐인 대책'으로 지적됐다. 이상만 중앙대 교수는 "유통구조 단순화, 저장시설 확충 등은 20년도 더 된 대책의 반복"이라며 "물가가 요동칠 때마다 선언에 그쳐 정책 신뢰도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왜곡된 독과점 시장구조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지만 공정당국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외식, 공공요금 등 억제대책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한 전문가는 "미국의 경우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이 가격통제 정책을 실패한 이후 누구도 쓰지 않는다"면서 "더는 내놓을 게 없어 억지로 내놓은 대책"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물가 전망은 더욱 어둡다. 공급을 크게 늘리거나 수요를 눈에 띄게 줄이는 등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물가인상 목표치인 4.0%는 이미 물 건너갔다"면서 "4% 초반으로 묶을 수 있기만 기대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가를 잡으려면 유연한 금리정책, 농산물 공급 다변화와 유통경로의 탄력성 제고가 시급하다는 주문이 많았다. "기대인플레를 선제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금리정책"(권영준 교수), "해외 계약재배 확대, 유통구조 단순화 정책의 지속 추진"(이상만 교수) 등과 함께, "고물가로 고통 받는 서민층에 대한 지원 확충이 시급하다"(김원식 교수)는 의견이 제시됐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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