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정책 풍향계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일 대북정책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서는 "북측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의미 있는 남북관계를 이뤄나가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대북 정책의 업그레이드를 주문했지만 천안함∙연평도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한 듯하다.
8∙30 개각에서 통일부 장관에 류우익 전 주중대사가 내정되면서 남북관계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류 전 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현정부의 초대 대통령실장을 지냈다. 일각에선 대북정책 변화 및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주문한 '대북 정책 업그레이드'의 구체적 내용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류 후보자 내정 자체가 대북정책 변화의 신호다. 류 후보자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면서도 남북관계의 실질적 발전을 위한 유연성 발휘를 강조했다.
청와대는 최근 몇 차례 개각 때마다 장수 각료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교체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미뤘다. 대북 강경 노선의 아이콘이 된 현 장관을 교체할 경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 '잘못된 신호'는 북한이 현 장관 교체를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진정한 사과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지원은 없다'는 우리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이제는 현 장관 교체가 북한에 더 이상 잘못된 신호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판단일까. 그럴만한 상황 변화, 특히 북의 태도 변화가 있었는가. 하지만 북한은 지난 6월 초 외교사에 유례 없이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우리에게 사과는커녕 도발적 행동을 했다.
교조적으로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원칙은 유연성과 융통성을 가질 때 강력한 힘을 갖는다. 원칙 적용이 상황에 맞게 유연해지려면 그에 따른 솔직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류 후보자를 통일부 장관에 내정하면서 현 장관을 대통령 통일정책특보로 임명한다고 해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유지되는 것으로 보는 국민은 많지 않다.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집권여당의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둔 표 계산 때문에 가속화되고 있는 측면도 우려된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최근 당원연수회에서 지난해 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한나라당이 반통일세력으로 몰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제 남북관계에서 전향적 입장을 보여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업그레이드 하겠다면 솔직한 자세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남_북_러 가스관 사업 등을 동원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할 수는 없다.
정부가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지도 않은 채 남북관계 개선에만 매달린다면 북한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미∙중∙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남한을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북정책을 업그레이드하기는커녕 그 동안 우리가 보낸 '잘못된 신호'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김동국 정치부 차장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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