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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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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

입력
2011.09.0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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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시작부터 볕이 뜨겁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10여분 동안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기상특보를 들어보니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역까지 있다고 한다. 그래도 9월의 더운 볕이 나는 고맙다. 절을 하고 싶을 정도로 고맙다. 이 볕에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배밭의 배마다 단맛이 속속들이 깊이 배어들 것이다.

경남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 사과밭의 사과들도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큰 일교차로 제 몸속에 특유의 '밀증상'(Water Core)인 향기로운 '꿀'을 만들며 익어갈 것이다. 전국 최대의 포도생산지인 경북 영천시의 포도밭에서는 포도 익어가는 향기가 유혹적일 것이다.

영천의 포도로는 와인을 만들고 있으니 유혹적인 향기는 내가 즐겨 마시는 영천 와인 속에도 고스란히 담길 것이다. 농부들에게 이 볕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소원처럼 절실한 것이리라. 일광욕을 즐기던 디오게네스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와 소원을 물었을 때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던 일화처럼 지금 그들에게 소원을 묻는다면 마찬가지의 답을 들을 것이다.

우리는 이 볕을 일러 '황금햇살'이라 말한다. 그건 햇살이 황금빛을 닮은 것이 아니라 황금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9월의 햇살은 황금이다. 순도 99.99%의 순금이다. 지금 그 황금들이 쏟아져 내린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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