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A아파트(109㎡형)에 사는 회사원 강모씨는 요즘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달 말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1억원을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2년 전 전셋값이 2억3,000만원이었으니, 한꺼번에 50%가까이 오르는 셈이다. 강씨는 "비슷한 크기의 주변 아파트들도 그 정도씩 전세금이 올랐다"며 "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가계대출 급증세의 주원인 중 하나는 서민 전세난이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금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서민들의 전세자금 대출 수요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애꿎은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1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월간 주택가격동향 조사 결과, 2009년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평균 전셋값은 19.7% 올랐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1.2%포인트는 지난 1년 새 오른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값 대비 전셋값 비율(전세가율)도 지난해 8월 44.6%에서 올해 1월 46.9%, 7월 50.1%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문제는 전셋값이 당분간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박합수 국민은행 프라이빗뱅크(PB) 부동산 팀장은 "전셋값 상승세가 10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라며 "48% 수준인 서울의 전세가율도 조만간 50%를 넘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셋값이 급등하다 보니 서민들 입장에서 대출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5개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규모는 4조4,485억원으로 7월 말보다 8.25%(3,391억원) 급증했다. 이들 은행의 작년 8월 전세자금 대출액이 1조7,027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2조7,458억원(161.26%)의 신규 대출이 생겨난 셈이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든 막겠다는 입장이지만, 전셋값 상승세를 감안하면 공염불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금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오르는데 현금 쌓아두고 올려 주는 세입자는 없다"면서 "전셋값 안정 없이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도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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