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의 실세였던 엄삼탁 전 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의 유족이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수백억대 부동산 소유권을 놓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31일 서울고등법원에 따르면 엄씨의 부인인 정모씨 등과 엄씨의 고교 후배이자 측근이었던 박모(72) 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부회장 사이에 강남구 역삼동 소재 18층짜리 빌딩 소유권을 가리는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빌딩은 시가 600억원으로 추정된다.
2008년 지병으로 사망한 엄씨는 사망 직전 지인에게 "원래 이 곳 토지와 건물은 내 소유인데 박씨 명의로 명의신탁을 해 놓은 것이니 가족들이 돌려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 엄씨는 이와 함께 박씨의 인감증명이 첨부된 확약서와 위임장, 각서를 건네주었다. 문서에는 '위 부동산은 비록 본인 명의로 되어 있으나, 실질적인 소유자는 엄삼탁이며 본인은 단순한 명의수탁자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엄씨 유족은 "당시 토지와 건물의 소유주였던 권모씨 등이 엄씨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이를 변제하기 위해 2000년 부동산을 (엄씨에게) 팔았다. 다만 신분을 노출하기 어려운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에 매수인을 박씨로 하고 그 동안 명의를 맡기고 관리토록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씨는 실제 실소유주가 노출될 만한 어떤 자료도 남기지 않는 등 철저히 해당 부동산을 박씨 재산으로 꾸몄다.
박씨 주장은 달랐다. 박씨는 유족들에게 "내가 엄씨에게 산 것으로 그 후에 내 돈으로 새로 건물까지 올렸다. 대금도 매달 일정 금액 나눠 지불했다"고 반박했다. 또 "잔금 완불 시 그 전의 관련 문서는 모두 효력을 상실한다"는 내용의 확약서까지 제시했다.
결국 엄씨 유족은 박씨를 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발하는 한편, 서울중앙지법에 소유권이전등기말소등절차이행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모두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횡령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원심부터 상고심까지 "박씨가 엄씨로부터 부동산을 명의신탁 받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은 들지만, 진실이라고 확신을 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씨의 무죄를 확정했고, 민사소송 1심 재판부 역시 같이 이유로 엄씨 유족의 소를 기각했다. 민사소송에 대한 항소심은 9월 초 선고 예정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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