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인근에 위치해 남산 경관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논란을 빚어온 호텔신라의 건물 증축 공사가 호텔 측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게 31일 확인됐다. 제동을 걸어온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이 입장을 바꿔 '솜방망이' 자연경관지구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킨 때문인데, 환경보호를 외쳐온 그간 민주당의 정체성과 상반된 것이어서 배경에 의혹이 일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 도시계획위원회는 6월 중구청에 반려한 호텔신라의 건축규제완화 요청서를 서울시도시계획조례 39조(자연경관지구 조례) 개정 이후인 지난달 22일 호텔신라로부터 재접수 받아 검토 중이다.
호텔신라가 도시계획위원회에 새로 제출한 계획안을 보면 면세점(2층)을 헐고 4층 호텔(증가면적 9,512㎡)을 신축하고, 주차장 부지에 4층 면세점(증가면적 1만2,986㎡)을 짓기로 한 당초 증축ㆍ신축 규모에서 조금도 축소 또는 조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당초 조례에서 '너비 25m 이상의 도로에 접할 경우 자연경관지구에서 증축을 가능하게 한' 기존 문구를 삭제하려던 민주당 시의원들이 지난달 8일 본회의 표결에서 갑자기 입장을 바꾼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시의회는 이 조항을 삭제하는 김연선 시의원 안 대신 '한국 전통호텔일 경우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을 추가한 도시관리위원회 안을 통과시켜 호텔신라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표결 며칠 전 허광태 시의회 의장과 최웅식 교통위원회 위원장과의 통화에서 '의원총회에서 단서조항 삭제로 의견을 모았으니 걱정 말라. 당론으로 챙기겠다'고 했었는데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왔다"며 "호텔신라의 시의원에 대한 개별 로비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허 의장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 된다. 다음에 통화하자"고 정확한 해명을 미뤘다. 최 위원장은 "김 의원이 의원들 사이에 인심을 잃어 투표장에서 마음을 바꾼 의원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의회의 조례 결정 과정이 부자연스럽고 엉뚱했는지는 통과된 안을 주도한 이원기 시의원의 선택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일보 확인 결과, 이 의원은 본인이 제안한 도시관리위원회 안이 아닌 김 의원 안에 찬성투표를 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 위원인 최강선 시의원은 호텔신라가 있는 중구가 지역구로, 호텔신라 증축계획을 심의하는 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사실 내가 주도한 안 자체가 임시방편일 수 있어 김 의원 안에 투표했다"며 "지난해 김 의원 안이 부결돼 똑같은 안을 발의할 수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자신도 투표하지 않은 안을) 발의했다"고 해명했다.
개정 조례안은 자연경관지구의 난개발을 막기는커녕 면죄부를 준 격이다. 호텔신라는 지붕에 기와를 얹는 간단한 방법으로 증축제한을 피했다. 오히려 건물 앞에 새 도로를 내고 부지 일부를 시에 기부채납해 주차장 공사까지 더했다.
호텔신라 외에도 하얏트, 밀레니엄힐튼 호텔 등도 남산의 '너비 25m 이상의 도로'에 접해 있어 새 조례에 따라 '한국전통'양식만 충족하면 언제든 증축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건축법상 '한국전통호텔'양식에 대한 규정이 없고, 관광진흥법상 호텔업의 시행령에도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 얼마든 편법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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