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개강을 하면서 라디오를 샀다. 집에 오랜 손때가 묻은 라디오가 있지만 학생들과 시를 읽을 때 함께 듣기 위해 새 라디오를 사서 연구실에 한 쪽에 놓아두었다. 라디오 하나에 오래된 옛 친구가 연구실에 웃으며 찾아온 기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즐겨 듣는 아이였다.
과학시간에 배운 대로 코일을 감아 광석라디오를 만들어 듣기도 했다. 고교 시절엔 당시 마산MBC 별밤에 이용복의 '줄리아'와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Solitary Man', 'Sweet Caroline'를 예쁜 엽서로 신청해서 듣는 소년이었다.
컬러 TV가 나오면서 그 '바보상자'에 홀려 정말 바보가 되어 라디오를 잊고 지내다 은현리에 살면서 다시 라디오와 친구가 됐다. 그때부터 내가 즐겨 듣는 방송은 KBS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저물 무렵, 라디오로 듣는 좋은 음악은 적막한 시골생활에 따뜻한 친구가 되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24시간 손에서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으로 자신만의 세상과 소통한다. TV의 요란한 방송과 블록버스터에 열광할 뿐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2학기에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겐 라디오를 듣는 즐거움을 가르치고 싶다. 그 친구들에겐 낡은 형식의 라디오지만 듣다보면 또 다른 행복이 거기 있다는 것을 이 가을엔 가슴으로 알게 하고 싶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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