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다른 이의 대화나 통화를 엿듣게 된다. 특히 듣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나누는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대화는 그 또래 나름의 생활과 생각, 고민 등을 짐작할 수 있어 사회 전체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도 적잖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톡톡 튀는 어법은 재미있고 종종 기발하기까지 해서 고개를 돌리고 혼자 슬그머니 미소를 지을 때도 많다. 그들끼리만의 독특한 말투 중에 가장 자주, 인상적으로 들리는 게 "아, 진짜?"다. 잠깐의 대화에서도 수없이 들을 만큼 남녀 가리지 않고 다들 입에 달고 산다.
■ "나 오늘 ○○ 만나." "아, 진짜?" "나 좀 피곤해." "아, 진짜?" "거기 같이 가지 않을래?" "아, 진짜?"… . 시도 때도 없이 쓰는 용법으로 보아 그냥 별 의미 없는 맞장구 정도의 의미다. 진짜 놀라서 하는 반응이거나 상대방 말의 진위를 의심하는 뜻이 담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긍, 또는 동질감의 확인에 가깝다. 영어에서"Really?"의 쓰임새와 정확히 같고, 과거 세대 말투에서의 "어, 그래?"와 같다. 물론 "아, 진짜 억울해." "아, 진짜 짱(짜증)나."등처럼 원래의 강조부사 의미로 쓸 때와는 다른 용법이다.
■ 언어의 변화에는 반드시 그만한 시대적 이유가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아, 진짜?"의 범용(凡容)도 가벼이 볼 것만은 아니다. 일찍이 에리히 프롬이 에서 규정했듯, 언어는 온전히 경험으로 채워진 그릇이므로. 지난해 이맘때쯤 란 칼럼을 썼다. "고객님, 5만원 나오셨습니다" "주부님,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등의 무분별하고 기형적인 공대(恭待)어 사용이 도리어 존중과 배려가 갈수록 퇴색해가고 있는 우리 현실의 역설적 반영임을 지적하고, 진정성이 결여된 우리말의 위선적 진화를 걱정했다.
■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무심히 쓰는 "아, 진짜?"도 어쩌면 불신사회가 만들어낸 어법으로 추측해보는 게 전혀 엉뚱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배웠던 가치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존경하고 믿었던 인물에게서 배신당하고, 예상도 할 수 없던 기막힌 일들이 허구한날 일어나는 지독한 불신과 불안의 시대다. 그 속에서 그나마 스스로를 지켜보려는 소극적이고 연약한 방어적 확인 심리가 애초에 "아, 진짜?"가 쓰이기 시작한 연유가 아닐까? 매일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찻집에서 그렇게 바닥 모를 불안을 읽는다. "진짜?" "아, 진짜?"….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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