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이 31일 보건복지부에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4월 특수법인으로 전환돼 원장으로 취임한지 1년5개월 만이다.
박 원장은 이날 “정부 출연금으로 운영하는 공공 병원에서 해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지켜보는 심정이 매우 서글프고 안타까웠다”며 “특히 한 사람의 의사로서 파업 전야제라며 입원실 바로 옆에서 노동조합원들이 커다란 확성기를 이용, 입원 환자들을 괴롭힌 상황에 대해 죄송스럽기 그지 없었다. 다시 한번 환자분들께 정중히 사과 말씀을 올리며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중앙의료원 부지 이전 관련 문제는 정부가 판단해서 결정할 영역이지 원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사직의 변을 덧붙였다. 저소득층 치료 등 공공의료의 중추 역할을 해온 중앙의료원은 서울 도심(을지로)에서 서울 외곽 원지동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확정되면서 노조가 “공공의료의 후퇴”라고 반발하며 노사간 갈등을 빚어왔다.
서울시는 2003년 원지동 화장장 건립 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중앙의료원 원지동 이전 카드를 꺼내 들어 지난해 초 이전이 확정됐다. 반발 없이 이뤄질 것 같았던 이전 작업은 지난해 4월 중앙의료원이 법인화 되고 노조가 출범하면서 논란이 점화됐다.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는 “중앙의료원은 공공의료기관이 전체 의료기관의 10% 수준 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중추적 기관”이라며 “명실상부한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려면 최소한 1,000병상 이상 돼야 하는데 원지동 부지는 면적이 부족하고 대중교통 접근성도 떨어져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중앙의료원은 540병상으로 원지동 부지도 이 정도 병상밖에 들어설 수 없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정책실장은 “화장장 반발 무마용으로 중앙의료원을 옮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저소득층이 이용하는데 거기까지 어떻게 가겠느냐”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조가 생기고 민주노총이 개입하면서 9% 가량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이전과 관련해서도 의료원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건립ㆍ운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도록 맡겨놓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시설 현대화와 역할강화 등을 위해 올해 400억원, 내년 300억원 등 기존보다 더 많은 국고를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측은 “임금 협상은 매년 하는 것인데 그걸 이유로 원장이 사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애초 협상 결렬로 30일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일단 유보하고 추가 협상에 나서기로 한 상태였다. 복지부는 아직 박 원장의 사표 수리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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