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총장을 교수 직선으로 뽑는 현행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대학구조개혁위원회가 내놓자 논란이 불붙고 있다. 대학구조개혁위는 다음달 안으로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정부의 논리는 명료하다. 올해로 시행 20년째인 총장 직선제의 폐단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학내에 파벌을 형성해 대학을 정치판으로 변질시키고 있고, 선거때마다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선거권자인 교수를 돈으로 매수하는 일도 벌어지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총장 직선제 폐지라는 입장이다. 장보현 교과부 국립대제도과장은 "직선제로 뽑힌 총장이 교수들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대학 개혁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들은 격앙된 분위기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장 직선제는 1980년대 대학 민주화 운동의 최대 성과이자 이후 대학 자치를 지키는 수단으로 기능해 왔는데, 정부가 맞지도 않는 논리를 대면서 폐지하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립대 법인화 정책이 교수들 반발에 막혀 여의치 않자 엉뚱하게 총장 직선제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시각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찬성
우리나라 국립대의 비중은 2010년 기준 전체 대학의 10.5%, 학생 수는 23.5%를 차지한다. 정부로부터는 4조2,000억여 원을 지원받아 전체 대학재정 지원 금액의 약 6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나라 고등교육에서 담당하는 국립대의 역할과 책임은 물론 상아탑을 대표하고 대학을 경영하는 총장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립대 총장 선출제도는 1987년 이전까진 정부가 모두 임명하는 형태였고, 사립대는 학교재단에서 임명하는 방식이었으나, 88년 이후 대학의 자율화 바람과 민주화에 따라 국립대의 경우 91년부터 교육공무원법 개정으로 대학이 자체적으로 총장과 학장을 선임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공무원법은 위원회를 통하여 총장을 선출하거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르든지 대학이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모든 국립대가 직선제를 통해 총장을 선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사립대는 직선제의 단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최근 일부 대학만 빼고 모두 직선제를 폐지한 상태다.
총장직선제의 도입 초기에는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직선제 시행 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민주화의 명목으로 도입된 총장직선제가 과연 교육의 질적 향상과 연구력 향상에는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손익계산서를 따져봐야 할 때가 되었다.
총장직선제가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폐해를 입증할 수 있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학맥, 인맥, 지연 등에 따른 파벌형성과 과열 선거운동은 막대한 선거비용과 향응, 금품수수, 상호비방에 따른 학내 갈등을 낳았고, 이러한 폐해는 총장선출을 둘러싼 교수들의 정치화로 대학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논공행상에 따라 역량 있는 인사의 보직임명에 제약이 따르며, 재정부담을 초래하는 후생복지에 관한 공약남발로 예산집행의 낭비와 함께 등록금 인상요인을 부추기는 등 적지 않은 후유증을 초래했다. 실제 C 대학의 경우, 전 총장 임기 말 공약 이행이라는 명목으로 교직원의 급여보조성 경비 40%을 인상하기 위해 기성회비를 올리면서도 자산취득비 등 보다 긴급한 예산은 삭감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대학이 직면한 개혁과제의 측면에서 보면, 총장은 자신을 지지해준 교원들의 이해에 발목이 잡혀 대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다. 지역과의 상생발전과 특성화를 위한 학과 개편, 대학 간 통폐합 등 구조개혁을 소신 있게 밀어붙이기 어렵고, 교수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역 경제발전이나 산업인재 육성 등 지역과의 공생발전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여론을 부추기면서 대학의 구조개혁 드라이브와 맞물려 최근 발표된 국립대선진화방안의 주요과제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총장선거는 기본적으로 정치 과정으로서 학내 정치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과제의 핵심은 '선거에 의한 선출'은 어떠한 방식이라도 배제하되, 구성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고, 선거 대신 총장추천위원회의 실질적인 기능을 살리는 것이 기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역량 있는 내외부 인사가 총장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공모제를 도입하고 총장추천위원회 산하 관련 위원회의 후보추천을 병행하되, 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대폭 영입하여 공정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후보검증과정에서 서면심사, 인터뷰, 교직원․학생을 위한 청사진 발표 등을 통해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할 수도 있다. 직선제 폐지 여부와 그 방식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되, 선진화 수준의 평가를 통해 직선제를 폐지하는 대학에는 과감한 재정적 인센티브가 돌아간다.
정부가 직선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의도는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대학에 대한 관치행정을 고착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우고 외적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대학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대학을 발전시키고 캠퍼스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인사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은 지금과 같이 분열과 갈등, 낭비를 초래하는 형태의 총장직선제가 대안이 아니다.
장보현 교과부 국립대제도과장
● 반대
대학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그래야 진리탐구라는 소명을 다할 수 있다. 유럽 대학 1,00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 헌법이 학문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대학에 자치권을 인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과거 일제의 군국주의와 군사독재정권과의 기나긴 투쟁과정에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권을 쟁취했다. 그 소중한 성과물이 총장직선제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가 작금의 대학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다시 흘러간 옛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이주호 장관은 총장 직선제가 국립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므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것이다. 현재 대다수 국공립대는 총장직선제, 대다수 사립대는 재단임명제를 채택하고 있다. 교과부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국공립대가 사립대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인 교육ㆍ연구 지표는 교과부장관이 선전해 온 것과는 정반대로 국공립대가 사립대에 비해 경쟁력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교과부가 추진하는 법인화 정책이 대다수 국립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여의치 않게 되자, 교과부가 직접 국립대를 장악하기 위해 총장직선제 폐지를 들고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장직선제 폐지론자들은 과열, 혼탁 선거로 인해 연구 분위기가 저해된다는 점을 든다. 총장직선제에 선거과열이라는 단점이 있을 수 있고, 또 일부 국립대 총장선거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총장선거와 관련해 대학교수들도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1980년대 대학민주화운동의 최대의 성과물이고, 절대 다수의 국공립대에서 20년 이상 운영되어 정착된 총장직선제를 폐지해야 하는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울 셈인가.
대통령직선제에도 총장직선제 이상의 폐해가 있다. 그렇다고 다시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직선제는 민주적 정통성과 통합성이라는 측면에서 간선제나 임명제에 비해 월등히 장점이 많은 제도라는 것이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됐다. 총장임명제의 폐단을 지적하기 위해 굳이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학의 어두운 역사를 상기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간선제라고 해서 부정선거, 금품선거가 사라진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간선제는 직선제에 비해 국가권력, 자본권력의 간섭과 통제에 훨씬 더 취약하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고, 제도마다 각기 장단점이 있다. 문제는 어느 제도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더 적합한가이다.
지금 지적되고 있는 총장직선제의 문제점은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총장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제도나 절차를 마련하고, 또 총장선거 부정을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또한 교과부 장관은 총장직선제가 가지고 있는 일부 부작용을 제어할 법적 권한이 있다. 이번에 문제된 대학의 신임총장 임용 제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우리나라 교과부는 국립대의 예산, 인사, 입시 등 대학행정 전반에 걸쳐 지시하고 간섭한다. 우리나라 국립대는 아직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반영과목 하나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교과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이다. 헌법상 보장된 대학의 자치가 무색할 지경이다. 이처럼 대학에 대한 관료주의적 통제가 계속되는 한, 총장직선제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남아야 한다.
폐지론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총장 직선제를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에게 OECD 회원국, 아니 문명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대학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나라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주호 장관 자신조차도 교과부의 간섭이 얼마나 심하다고 보았으면 교과부 해체를 평소 지론으로 내세웠을까.
총장직선제 폐지는 헌법적 가치인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과 직결된 문제이다. 교과부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기를 충고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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