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고 지칠 때 보성의 벌교시장 입구 무심한 듯 숨어있는 '할매밥집'을 찾아가보라. 그 밥집엔 작은 탁자 3개뿐. 나이 든 시어머니와 젊은 며느리가 들어서면 비좁은, 연신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주방에서 바쁜 손과 발과 몸이 정성으로 차려주는 새벽밥을 받아보라.
밥집이 좁아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합석을 하거나 뒷자리 사람과 등을 맞대고 먹는 불편한 밥이라 행여 투덜거리지 마라. 낯설고 낯선 시간에 한 자리에서 만나 한 밥상을 받는 것도 귀한 인연이어서 눈빛이 마주칠 때마다 오히려 반갑다. 앉는 자리가 좁아 맞댄 등에서 전해져 오는 사람의 온기는 또 얼마나 따뜻한 위로인지.
사람에게서 밥을 먹는 초식동물의 착한 울림 같은 것이 당신의 등을 타고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이 되는지 느껴보라. 그리고 밥상 위엔 열여섯 가지쯤 되는 남도 반찬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기름진 고기반찬은 없어도 싱싱한 풋것들의 손맛. 누구에게나 갓 지어내는 뜨끈뜨끈한 고봉밥. 맑은 콩나물 국 한 그릇.
배불리 먹고 일어서다 마지막엔 2,000원 하는 밥값에 놀라지 마라. 커피 한 잔이 되지 못하는 밥값을 함부로 싸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기름진 것인가에 대해 반성하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에 오늘은 벌교시장 옆 할매밥집의 밥이라 말하고 싶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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