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장거리 황제'는 너무나 초라하게 물러났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만m에 출전한 케네니사 베켈레(29ㆍ에티오피아)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및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000m와 1만m를 동시 석권한 베켈레는 이번 대구 대회에서 트랙 선수 가운데 사상 첫 5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에 도전장을 냈다.
'장거리의 우사인 볼트'로 불리는 베켈레는 28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자 1만m 결선에서 레이스 도중 갑작스럽게 중도 포기했다. 10바퀴를 남겨 둔 상황에서 트랙 바깥으로 걸어 나왔고, 결국 기권 처리됐다. 현재 5,000m 세계기록(12분37초35)과 1만m 세계기록(26분17초53) 보유자인 그의 이탈에 대구스타디움은 한때 크게 술렁거렸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부상에 따른 훈련시간 부족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베켈레는 지난해 1월 장딴지 근육이 파열됐고, 1년 넘게 공식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무뎌진 실전감각을 회복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고, 컨디션 등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전을 강행하다 보니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베켈레는 1990년대 세계육상 장거리를 평정했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8·에티오피아)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1만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에 감동 받아 그의 훈련파트너를 자청했다.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대회 1만m에서 생애 처음으로 게브르셀라시에를 넘어섰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게브르셀라시에의 사상 첫 1만m 올림픽 3연패 도전을 좌절시키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아테네올림픽을 끝으로 마라톤으로 전향, 세계기록(2시간3분59초) 보유자가 됐다. 베켈레 때문이었다.
베켈레는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및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5,000m와 1만m를 동시에 석권, 사상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장거리 2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세계선수권 최다 연속 우승 기록(6회)을 가진 남자 장대높이뛰기 세르게이 부브카(48ㆍ우크라이나)에 한발 더 다가서려 했던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특히 수 차례 밝혀온 런던올림픽에서의 마라톤 전향도 멀어지게 됐다.
한편 이날 경기에서는 이브라힘 제일란(에티오피아)이 남자 1만m 결선에서 27분13초81을 기록, 우승을 차지했다.
대구=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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