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이끌어온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이 다음달 400호를 맞는다. 1978년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를 시작으로, 기형도 이성복 황지우 김혜순 최승자 등을 거쳐 2000년대 문태준 이병률 진은영 심보선 등에 이르기까지 문지 시인선은 숱한 스테디셀러를 내며 한국 현대시의 든든한 산파 역할을 해왔다. 1975년 신경림의 <농무> 를 1호로 지금까지 334호를 낸 '창비시선'과 더불어 한국 시단의 양대 기둥이다. 농무> 나는>
최근 397호로 심보선의 <눈 앞에 없는 사람> 을 낸 문학과지성사는 다음달 두 권의 시집을 더 낸 뒤 400번째 기념호로 300호대 시인들의 주요 시를 골라 시선집을 낼 계획이다. 1호가 발간된 지 33년 만으로 해마다 평균 11.8권, 거의 매달 한 권씩 낸 셈인데 국내 시집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호수다. 100호 단위로 황토색, 청색, 초록색, 밝은 고동색으로 표지색을 바꾼 이 시리즈는 400호부터 또 다른 색으로 바뀐다. 표지에 실리는 캐리커처는 이제하 시인이 계속 그린다. 눈>
계간 문학과사회는 가을호에서 문지 시인선 400호를 기념해 문학평론가 정과리 강계숙, 시인 황인숙 이원 문태준 하재연이 참여한 기념 좌담을 실었다. 정과리씨는 "문학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문학과 사회의 복잡한 연관을 추적한다는 정신이 지금까지 문지 시인선을 최고의 시인선으로 이끌어온 힘이 됐다"며 "이념이 쇠퇴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시적 경향을 수용하게 됐는데, 인식의 새로움, 절실성, 그리고 정직성이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평가했다. 강계숙씨는 "문지 시인선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여성 시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며 "1981년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과 김혜순 시인의 <또 다른 별에서> 가 나오면서 더 이상 한국문학에서 '여류 시인'이라는 말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이>
문학평론가 백낙청, 소설가 이제하 조경란, 변호사 강금실씨 등이 문지 시인선과 맺은 인연을 담은 산문도 실었다. 경쟁관계인 창작과비평사를 이끈 백낙청씨는 "문학인의 사회 참여를 촌스러운 정치주의인양 꼬집곤 하는 문지 쪽이 야속할 때가 있었다"면서도 "민족민주운동에 골똘한 나머지 창비가 제대로 못한 것도 너무 많았던 점은 부인할 길이 없으며, 이 대목에서 문지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밝혔다. 조경란씨는 "내 독학 시절의 문학의 선생이자 말벗, 그 시작이 문지 시집들이었다"고 전했고, 강금실씨는 "문지 시인선을 비롯한 문지의 책들은 청춘 시절 지성의 저장고였다"며 특히 황인숙 시인과의 인연을 풀어놓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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