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직접지령으로 간첩활동을 해온 반국가조직 '왕재산'이 검찰과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의 합동수사로 적발됐다. 조직총책 김모씨는 생전의 김일성 주석을 직접 만나 '접견교시'를 하달 받은 뒤 IT사업자로 위장해 2001년부터 본격적인 간첩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원 중에 전 국회의장 비서관이 포함됐듯 이들은 시민사회를 넘어 제도권 정당 등 영향력 큰 계층으로까지 활동영역 확대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북한에 보고했다는 남한정세나 군사시설 등의 정보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확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크게 심각한 내용은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평시 사회갈등과 혼란을 확대하고 유사시 행정기관과 언론, 군부대 등을 장악하는 역량을 키우도록 지속적 지도를 받아왔다는 점이다. 우리사회의 저변을 허물고 북한정권의 목적에 유리한 방향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활동이 사실은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북한 노동당과 김일성ㆍ김정일 부자에게 무한한 충성과 죽음을 불사한 혁명투쟁을 맹세하는 따위의 시대착오적이고 도착적인 행태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도 없다.
수사상황이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민주노동당 등 이른바 진보세력은 "색깔공세이자 전형적 표적탄압" "이명박 정권이 위기국면을 모면키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는 등의 상투적 반응을 보였다. 진보이념표방세력과 종북(從北)세력이 뒤엉킨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엄중한 국가안보 관련사안을 걸핏하면 '역(逆)색깔론'으로 희석시키려는 태도는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어떤 정치, 사회세력이든 종북의 혐의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도리어 소중한 진보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종북세력 척결을 강조하면서 왕재산 사건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권위주의정권 때처럼 공안사건 조작이 가능한 시대가 아님을 믿지만, 검찰은 이후 재판과정에서 추호의 논란 여지가 없도록 완벽한 증거로 사건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서툰 공안수사는 거꾸로 종북세력을 키우는 텃밭이 된다는 사실을 재삼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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