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2에서 중국, 대만과 같은 수준인 Aa3로 한 단계 강등했다.
무디스는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2009년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일본의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국가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며 등급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장기 침체로 경제성장 전망이 보이지 않는데다 최근 5년 동안 총리들이 1년 이상 재임하지 못한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도 등급 강등의 요인으로 꼽혔다. 3월 11일 발생한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로 향후 정부 차원에서 거액의 채권 발행이 불가피하게 된 점도 신용하락을 부추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 조짐은 이미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1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9년 만에 한 단계 낮췄고 무디스도 2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하며 등급하락 가능성을 예고했다.
무디스가 등급 강등의 가장 큰 이유로 지적한 재정적자는 올해 연말 1,000조엔(1경4,0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배에 달한다. 국가부채도 6월말 현재 943조엔 가량으로 과거 최고치를 넘어섰다.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은 일본의 국채와 지방채를 합친 국가채무 총액이 올해 연말이면 GDP 대비 204%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재정 위기에 몰린 그리스(138.6%), 아일랜드(112.7%)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국채 회수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시급히 취하지 않으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무디스의 조치에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장관은 "최근 국채 입찰이 순조로운 편이며 일본 국채 신인도에도 동요가 없다"며 무디스의 등급강등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일본 국채 중 95%를 일본 기업이나 개인이 보유하고 있어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와는 사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실제 무디스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24일 일본 주식시장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이날 닛케이225지수는 전일 대비 1.07% 하락하는데 그쳤고 달러-엔 환율도 76엔대로 큰 변화가 없었다. 무디스 역시 일본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평가해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한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았다.
일부 전문가는 도리어 이번 조치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예상한다. 오시마 가즈타카(大島和隆) 라쿠텐(樂天) 투신투자고문 사장은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이번 조치가 엔고에 제동을 걸어 주식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오카모토 요시히사(岡本佳久) 미즈호투신투자고문 임원은 "정치권이 재정 건전화 압력을 받으면 향후 채권을 매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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