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청담동 봄갤러리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열 두 살짜리 아이들로 가득 찼다. 초록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아이들은 사진 앞에 모여 서서 “여기에서 우리가 축구를 해요. 정말 멋지죠”, “얘가 태클을 하려고 했어요”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작가 권순섭(40)씨가 남아공에서 축구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와 ‘희망 축구공’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다. 이날 사진 속 주인공인, 임흥세(55) 감독이 이끄는 남아공 유소년축구대표팀원 20여명이 전시 오프닝을 찾았다. 17~22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2011 경주 국제 유소년(U-12) 축구대회’에 참가하고 오는 길이었다. 비록 경기에는 졌지만 처음으로 비행기와 버스를 타고 한국에 왔다며 마냥 흥에 겨운 모습이다.
렌즈에 포착된 아이들의 모습도 티없이 밝고 해맑다. 잡초가 우거지거나 풀 한 포기 없는 벌건 땅 위에서도 아이들은 맨발로 공을 쫓는다. 말랐지만 길고 검은 다리를 힘껏 뻗고 시선은 공을 향했다. 아이들은 임 감독을 통해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임 감독은 2007년 1월 축구를 통해 아이들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남아공을 찾았다. 케이프타운의 임부멜루아노(Imvumelwano) 초등학교 축구팀 창단을 시작으로 에이즈에 시달리는 아이들로 구성된 ‘에이즈 리그’, 소년원 아이들로 꾸려진 ‘소년원 리그’ 등 8세부터 14세까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50여개의 소규모 축구팀을 만들었다.
임 감독은 사진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아이들이 술과 담배를 하고, 마약과 범죄에 노출돼 있었어요. 그런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눈빛부터 달라졌어요. 축구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놀이가 아니라 희망이지요. 다들 축구대표 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꿈이라는 게 생겼다는 사실이 제일 기쁩니다.” 그는 남아공뿐 아니라 아프리카 54개국에 축구기술과 규칙 등을 담은 CD를 만들어 배급할 예정이다. 현지 코치 1,000여명을 양성해 지속적으로 아이들이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가 꾸는 꿈이다.
임 감독을 돕기 위해 지난해 카메라를 들고 남아공을 찾았던 권 작가는 “열악한 아프리카에서도 무얼 보는가에 따라 느끼는 게 달라진다”며 “그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의 희망과 꿈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장에는 약 20점의 사진들이 내걸렸고, 사진이 담긴 기념액자(3만원)를 구입하면 축구공이 기부된다. 전시는 31일까지. (02)540-3157.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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