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하면 흔히 기업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 현대차 따위의 재벌만 인재에 목말라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숨은 보석 찾기' 식의 사람 사냥에 혈안이 돼 있는 게 아니다. 고등교육기관을 대표한다는 대학이야말로 교수를 지칭하는 인재에 대한 갈증이 대기업 못지 않은 곳으로 분류된다. 대학의 수준을 결정짓는 최대 잣대가 되고 있는 연구 성과물을 내는 장본인이 교수인 탓일게다.
가깝고도 먼 대학 총장과 교수
대학 총장과 교수의 관계는 사실 묘한 구석이 있다. 교수 채용에 작용하는 파워가 거의 절대적이지만, 일단 교수로 임용되면 둘은 평행선상에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직이나 기업처럼 상명하복(上命下服)과는 거리가 멀다.(물론 총장이 임명하는 보직교수는 예외다.) 그 흔한 갑과 을의 종속적인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유행이 좀 지난 표현이긴 해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쯤 될 것이다. 서로의 존재는 분명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함부로 소통이란 표현을 들이대기에도 뭐한, 꽤 복잡미묘한 당신과 나다. 연구와 강의라는 전문성이 인정된다는 점이 교수가 총장에 질질 끌려다니거나, 총장이 교수를 함부로 하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이런 역학 관계는 총장 입장에선 인재 발굴에 걸림돌이 된 측면도 있었다. 유능한 교수를 뽑는데 까진 성공하더라도 그다음이 당최 총장의 의도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연구를 독려하는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학, 특히 사립대는 석학(碩學)으로 불리는 최고의 교수를 선발하는 작업이 대기업의 인재 발굴만큼 과감하거나 도전적이지 못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서울대 총장 시절 사석에서 "대학이 재벌의 인재(교수)욕심을 반 만이라도 흉내내고 실천에 옮겼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따지고보면 대학의 소극적인 행보를 지적하는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뒤집는 총장이 있다. 이길여 경원대 총장이다. 그는 인재 사냥을 위한 '마이 웨이'를 거듭하고 있다. 이 총장이 누구인가.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 출신이지만 지금은 경원대 오너다. 의사에서 교육자로 변신해 있다. 최근 같은 재단인 경원대와 가천의과학대를 합치는 '거사'에 성공한 그는 대학의 질은 학생이 아닌 교수에 에 달려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유독 인재 욕심이 많은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몇년 전 가천뇌과학연구소를 맡을 세계적인 석학 조장희 박사를 데려오기 위해 미국에 수 차례 직접 날아가는 '삼고초려'를 감행하더니, 이번엔 국내 장수(長壽)의학의 최고 권위자로 통하는 박상철 서울대 의대 교수를 가천 암ㆍ당뇨 연구원장으로 영입해 교육계와 의료계를 함께 놀라게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총장이 남부러울것 없는 노화 연구의 최고 전문가를 초빙했다는 팩트 자체가 아니다. 끊임없는 변화를 대학에 불어넣겠다는, 쉼없는 도전 정신이라고 봐야 한다. 안으로는 교수와 직원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밖으로는 정부에 휘둘려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는 총장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총장의 길, 의사의 길 되돌아봐야
박 교수는 어땠을까. 그의 입장에선 '서울대 의대 교수'라는 간판을 버리기엔 쉽지 않았겠지만,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측면이 크다고 여겨진다. 가천 암ㆍ당뇨연구원은 생쥐 3만여 마리를 사육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이다. 단일 동물실험 기관으론 국내 최대 규모이며, 서울대의대에도 이런 시설은 없다. 그로선 장수의학 성과물을 대규모 생쥐 실험을 통해 실용화하겠다는 결정을 내린게 아닌가 싶다.
대학의 변화 속도는 기업의 60% 수준 밖에 안 된다. 대학이 기업의 변화를 100% 따라가는 것은 무리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발전을 위한 변화의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총장은 그 중심에 있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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