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주인인 모 종중과의 소송에서 져 건물을 가진 주민 120여 가구가 쫓겨날 처지에 놓인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의 일명 '뺏벌'(한국일보 6월1일자 16면 보도)이 사유지가 아니라 국유지였다는 문건이 발견됐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토지 이력을 추적하고 나서면서 뺏벌 이주 갈등은 '국유지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뺏벌이주대책위원회는 모 종중 소유인 뺏벌의 과거 지번 '양주군 별내면 고산리 산116'이 국유지로 표시돼 있는 국가기록원의 문건을 찾아내 22일 본보에 공개했다. 이 문건은 일제 강점기였던 1916년부터 약 20년간 일제가 작성한 임야조사부(林野調査簿) 중 일부다. 한국전쟁으로 전국 대부분의 지적공부가 소실된 터라 토지 재산권 다툼에서 1차 근거가 되는 문건이다.
별내면 임야조사부에는 고산리 산116이 지목은 임야, 면적은 당시 단위로 '18정2단7무'로 표기돼 있다. 현재 면적으로 환산하면 약 18만1,190㎡(5만4,810평)다. 국유ㆍ사유 구별란에는 국유지란 의미의 '국(國)'이, 바로 아래에는 유상대여라는 뜻의 '유대(有貸)'가 적혀 있다. 연고자란에는 당시 종중 대표였던 '이모씨 외 2명'이라고 표기됐고, 비고란에는 종중재산이라고 쓰여져 있다.
토지등기부등본상 이 땅에 대한 소유권보존등기(첫번째 소유권 등기)가 이뤄진 것은 1964년 4월 18일이다. 본번(산116)이 쪼개지며 면적 7만4,262㎡인 산116-1로 등기부등본에 기록됐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뺏벌 주민들은 토지 정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일제가 산림법에 따라 1908년부터 3년간 신고하지 않은 임야를 국유림에 편입시켰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반세기 동안 종중 소유로 알았던 땅이 애초에 국유지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뺏벌대책위 관계자는 "뺏벌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에다 가난한 이들이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며 "뺏벌이 원래 국유지라는 것만 확인되면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지난달 종중 이사들에게 일제히 '부동산 소유권을 국가로 되돌리는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지 않으면 소유권 이전등기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의 서류를 발송했다. 종중이 6월 초 제안한 토지 임대료 감면 제안도 거절한 상태다. 현재는 소송에 대비해 국내 대표 법무법인들과 접촉하고 있다. 얼마가 들지 모르지만 소송비용은 십시일반으로 각출하겠다는 각오다.
이에 대해 종중 관계자는 "만약 국유지였다면 어떻게 500년간 조상의 묘를 모실 수 있겠느냐"며 "대응할 가치도 없고, 소송이 들어오면 얼마든지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민들 건물로 인해 종합부동산세 등이 부과되는데 이를 우리가 대신 내줄 수는 없다"며 "사정을 고려해 임대료를 낮춰주려 했지만 거부한다면 법적인 절차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 뺏벌
마을 근처에 있던 배나무밭에서 유래한 지명. 한국전쟁 뒤 미군기지 옆으로 피난민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동네로 2000년대 후반 미군이 떠나며 빈민가로 전락했다. 현재는 노동자와 양공주 할머니 등 약 140가구가 모 종중 소유의 땅 세 필지에서 살고 있다. 종중과 갈등을 빚는 산116-1에 120여 가구가 사는데 토지주 한 명에 주소도 하나지만 건물주는 여러 명인 독특한 형태다.
종중은 임대계약 약정을 거부한 주민 53명을 상대로 명도철거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다. 법원 결정에 따라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은 2018년 12월31일까지이나 종중이 토지를 팔지 않으면 임대기간은 2028년으로 10년 늘어난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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