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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옥으로 이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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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옥으로 이사하기

입력
2011.08.2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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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두 분 모두 크게 반대하셨다. 왜 그런 불편함을 감당하려 하냐며 도무지 이해를 못하시겠다는 반응이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넓은 곳으로 가야하는데 고작 열댓 평짜리 한옥이라니 영 마음이 안 좋으셨던 모양이었다. 그 동안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에 한껏 고무된 터였는데 이제야 비로소 현실과 마주하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이삿날. 덥고 습한 날이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 몸이 몹시도 무거웠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작업이 밤늦도록 좀처럼 끝날 기미가 없었다. 언덕바지 위 좁은 골목 끝에 위치한 집이라 차에서부터 짐을 일일이 들어 날라야 했다. 이삿짐 나르시는 분들께도 너무 죄송스러웠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밤 11시.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일이 일단 마무리됐다. 하루 종일 묵묵히 일하시던 아저씨가 문득 물으셨다. 그런데 왜 이런 데 살려 하냐고.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부모님의 걱정과는 또 다른 무게가 느껴지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불현듯 자신이 없어졌다. 솔직히 이삿날이 다가오면서 점점 걱정의 수위가 높아져온 게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왜" 라는 질문에 막힘 없는 답변을 준비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가끔씩 '아파트가 진정 최선의 주거형태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정도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마치 순례행렬 같은 인파에 휩쓸려 본의 아니게 보게 된 곳. 그곳이 북촌한옥마을이었다. 이름은 귀에 익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관심이었다.

이사 다음날. 차를 중고시장에 내놨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설령 주차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차를 빼줘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차 없는 생활이 시작된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상실감을 주었다. 집에 돌아오니 접시안테나 설치기사가 와있었다. 돌을 높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안테나를 얹지 않으면 수신이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했다. 당장 TV를 볼 수가 없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에어컨 설치기사였다. 또 하나의 복병이었다. 에어컨을 쓰자면 엄청난 대공사가 필요했다.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포기였다. 또 전화가 울렸다. 도무지 집을 못 찾겠다는 전화였다. 또 다른 전화. 주차할만한 곳을 묻는 전화였다. 그 때 불편함을 우려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왜 이런.."

그 다음날. 비로소 외출을 할 수 있었다. 동네 한 바퀴를 쉬엄쉬엄 걸었다. 담장이나 대문, 창문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기 달랐다. 대문 옆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툇마루에 앉아 보았다. 손바닥 만한 마당이지만 머리 위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살랑 한줌 바람이 불어왔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한옥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름이 다 지난 건지 저녁부턴 제법 선선했다. 짧은 하루였다. 생각해보니 TV와 에어컨 없이 보낸 여름 하루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에 깊이 뿌리내린 많은 것들이 갑자기 사라졌지만 그렇게 사라진 자리는 아주 작고 소소한 것들로 조금씩 채워질 것 같다.

김한중 EBS 지식채널e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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