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남쪽 내륙국가 카자흐스탄에서 우리 군함을 사겠다고 했다. 내해(內海)인 카스피해 귀퉁이에 접한 그곳까지 3,000톤 급 군함을 가져갈 방법이 궁금했다. 카자흐스탄 해군사령관의 답변이 흥미롭다. 인도양을 거쳐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면 지중해. 터키 이스탄불 앞을 거쳐 흑해로 들어가 크림반도 동쪽을 경유하면 아조프해. 이곳은 러시아 돈강의 하구. 돈강을 거슬러 오르면 침랸스크호(湖)를 만나는데 여기서 볼가-돈 운하가 이어진다. 1952년에 완성된 101㎞짜리 운하는 동쪽으로 볼가강 연안 볼고그라드에 닿고, 볼가강의 하구가 카스피해 아닌가.
▦그 운하를 통과해 볼가강 상류로 가면 모스크바. 내륙운하를 통과해 네바강으로 들어가면 상트페테르부르크, 발트해와 연결된다. 부산에서 러시아 중심부로 배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태평양 동해와 대서양 발트해가 연결되니 ‘대륙횡단 항로’라 할 만하다. 철로로 대양과 대양을 연결하는 대륙횡단철도 가운데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우리의 관심이다. 태평양 동해 연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서양 발트해 연안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약 1만㎞에 이른다. 모스크바까지 1주일 이상 걸리는 직행열차는 9,288㎞로, 세계에서 가장 긴 구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SR이 ‘대륙횡단 항로’보다 물류유통에 훨씬 유리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의 나진과 우리의 부산까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TSR과 연결하는 사업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에 러시아를 방문한 주요 목적 중 하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TSR-TKR 연결은 애초 러시아의 관심이 더욱 컸다. 2001년 북한과 정상회담에서 연결키로 약속했고, 2003년 한러 정상회담에서 연결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 2006년엔 러시아가 남북 철도책임자를 초청해 3국간 공동협력을 다짐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우선 블라디보스토크와 나진경제특구라도 연결하자면서 인근 철로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시선은 북한보다 우리 쪽에 쏠려 있어, 중간에서 통행료만 챙겨도 연간 1억 달러 이상 벌 수 있다고 북한을 설득하는 모양이다. 이 와중에 중국이 끼어들어 만주횡단철도(TMR)와의 연결을 요구하고 있다. 만주의 농작물을 황해까지 끌고 나오지 않고 바로 유럽으로 수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진 대신 신의주가 연결고리가 돼야 하고 TKR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래저래 부산과 모스크바를 잇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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