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무엇일까.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소설 속 생물 교사의 입을 빌어 작가는 말한다. 이는 작가의 상처가 역으로 투영된 말이다. 고교 시절 친구와 이웃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던, 그 5ㆍ18의 기억이 그에겐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흔이다.
고향 거문도에 머물며 바다를 낀 비릿한 삶의 풍경을 그려온 소설가 한창훈(48)씨가 8년 만에 낸 장편 <꽃의 나라> (문학동네 발행)는 꽃은커녕 수컷들의 거친 호흡으로 숨가쁘다. 교사가 분풀이로 중학생에게 100대의 매질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학교 폭력이 쉼 없이 펼쳐지다 종내 국가가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피비린내의 폭력으로 막을 내린다. 시대나 장소가 언급돼 있지 않으나, 1979년에서 1980년 5월까지 광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꽃의>
1부는 항구도시 출신의 열일곱살'나'가 대도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교사의 구타와 학생들과 싸움 등 폭력적 환경에서 몸부림치며 성장하는 이야기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리게 한다. 동네 깡패들에게 몰매를 맞고 학교 선배에게 구타를 당하고 교내 폭력 써클 '형제파' 패거리에게 굴욕을 당하는 나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폭력에 적응해 간다. 눈싸움 연습을 하고 권투를 배우면서 몸을 단련하고 '형제파'에 대응하는 다른 폭력 써클에 가입해 패싸움에도 가담한다. "스스로를 지켜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몇 달 사이 나는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것도 성장이라면,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71쪽)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움을 벌이는 풍경 한편으로 성에 대한 호기심, 친구들간의 우정, 풋내기들의 꿈과 희망 등 그 또래의 유머러스한 풍속도도 흥미롭게 그려져 폭력적 환경에서 성장통을 겪는 젊은이의 성장소설로 읽힐 만하다. 하지만 5ㆍ18이 벌어진 고교 2학년 시절을 다룬 2부에 접어들면 웃음기는 싹 가신다. 학교 폭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노출된 주인공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세상의 불가해함 앞에서 전율한다. 학생들은 전쟁이 난 것인지, 군인들이 집단으로 미친 것인지 제대로 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짓밟히고 총에 맞으며 죽어간다. "총은 달랐다. 탕, 소리 하나에 어떤 거구라도 곧바로 시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중략)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버리는 것. 한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것. 그게 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내는 게 주변에 널린 시체들이었다."(229쪽)
소설은 여수 출신으로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고교 2학년 때 5ㆍ18을 겪은 작가의 자전적 삶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친구 영기를 잃은 주인공처럼 가까운 친구들의 이유 없는 죽음을 목격한 그는 "요즘은 광주 이야기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은데, 슬그머니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0년이 흘렀고 역사적으로 정리될 것은 정리됐지만, 그와 별개로 문학 작품은 계속 나와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가 방점을 찍은 부분은 2부다. 그는 "1부에서 학교 폭력은 성장통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 폭력은 인간의 기본적 유대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린다는 점을 그리려고 했다"며 "국가폭력은 모든 가치를 파괴하는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잔인한 국가 폭력의 현장을 어떤 미사여구 없이 르포처럼 전달하는 소설은 우리가 어느 때고 고삐를 놓칠 때, 국가가 언제든 다시 덮칠지 모른다고, 차갑게 경고하는 셈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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