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만금·방폐장·천성산 터널… 졸속 추진했다가 극한 대립 불러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물론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1년 착공돼 19년 만에 방조제 공사를 마친 새만금 간척사업을 비롯해 2003년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사업, KTX 천성산 터널 공사 등 국책사업마다 극심한 대립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문제는 과거 사례를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목적의 졸속 사업 적잖아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으로 불렸던 새만금 사업은 출발부터 결말까지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대표적 국책사업이다. 91년 전북 부안에서 군산까지 총 33.4km를 방조제로 잇겠다며 시작된 이 사업은 환경논란 등으로 수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단 시작부터 정치적인 목적이 강해 사전 검토도 불충분했다. 87년 민정당 대선후보였던 노태우 대표가 전북지역 민심을 사기 위해 새만금 간척사업을 졸속으로 공약해 경제성 평가와 환경영향평가 등 사전조사는 부실했다. 98년 9월 감사원은 수질대책과 경제성에 문제가 있다며 사업 전면 재검토를 권고했고 2001년까지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공사는 재개됐지만 마찰이 이어졌다. 2003년 5월 천주교 원불교 등 3개 종단이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3보1배를 실시하자 전북도지사가 삭발하며 맞섰다. 2003년 7월에는 서울행정법원이 '담수호 수질이 심각하게 오염될 우려가 있고 회복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는 환경단체 주장을 받아들여 공사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고 이에 반발해 김영진 당시 농림부 장관이 사퇴하기도 했다. 끊임 없는 사업중단 논란에 시달려온 새만금 사업은 2006년 3월 대법원의 '새만금 사업 계속'확정판결로 긴 갈등의 마침표를 찍고 사업을 재개해 방조제 공사는 2010년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급조된 선거공약이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하는지 보여줬다. '새만금 리포트'란 책을 냈던 문경민 전 새전북신문 편집국장은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노태우 대통령과 두 번의 담판을 통해 새만금 공사를 시공시켰다"며 "정치적 거래로 사업이 진전된 만큼 부실하게 진행된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주민의견 수렴 부실이 갈등 키워
2003년 전북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갈등은 지자체장의 독단, 주민 의견 무시 등이 얼마나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지 보여줬다. 당시 김종규 부안군수는 2003년 7월 부안군 위도에 방폐장 유치를 신청했다. 이를 예상치 못했던 주민들은 반발했고, 생업을 뒤로 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군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시위는 폭력사태로 번져 주민 200여명이 다치고 45명이 구속됐다.
주민 간 갈등도 극에 달했다. 정부의 현금 보상 약속을 믿고 유치에 찬성했던 위도 주민들은 부안 주민들과 원수가 됐고 부안 주민들이 위도에서 생산된 멸치를 불매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안사태는 2004년 2월 주민투표에서 92%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고 그해 말 부안의 방폐장 후보 자격이 종료되면서 마무리됐다.
부안이 거부한 방폐장은 경주 군산 영덕 포항이 유치 의사를 밝힌 뒤 주민투표를 거쳐 가장 높은 찬성률을 기록한 경주로 결정됐다. 부안 사태는 군수가 주민 의견만 수렴했어도 갈등이 극에 달하지 않았을 것이란 교훈을 남겼다. 폐기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보다는 보상금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현실 속에서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표류했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 형식적
허술한 환경영향 평가가 갈등을 키운 사례도 있다. 2003년 천성산 터널 공사를 둘러싼 마찰이 대표적이다. 지율 스님은 '터널이 뚫리면 천성산에 사는 보호동물인 도롱뇽이 살지 못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100일 단식농성을 했고 환경단체와 함께 2003년 10월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6개월 간 공사가 중단됐고 시공사는 지율 스님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2009년 대법원은 지율 스님의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천성산 원효터널이 완공돼 KTX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이 개통됐다.
갈등의 1차적 책임은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에 있었다. 터널공사로 인해 고산습지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사전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환경단체의 반발 가능성이 높았지만 사업 주체나 정부는 이를 간과했다. 이는 비용과 시간 낭비로 돌아왔다. 사전 조사와 평가, 합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천성산 사태는 보여주었다.
갈등 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은 '결과'보다는 여론을 수렴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005년 경주 원전센터 선정과정의 실무를 총괄했던 지식경제부(당시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물리력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게 강한 정부였지만 지금은 대화하고 타협하는 게 강한 정부"라며 "이 점이 경주와 부안의 차이"라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갈등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시간이 걸린다 해도 토론하고 결론을 내려야 피해를 입는 쪽의 고통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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