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문학관 한옥집필실에 '성자(聖者)'가 있다. 그 분의 성씨도 나이도 모르는데 우연히 이름을 알고부터 성자씨라 부른다. 얼추 일흔 이쪽저쪽쯤 되는 나이인 것 같고 평사리 윗동네 상평에 산다. 성자씨는 평생 동안 평사리를 떠나 산 적이 없다.
성자씨는 평사리에서 태어나 평사리에서 살고 있는데 시집도 상평의 '아랫담에서 웃담으로' 왔다. 평사리에 집필실에 만들어지고부터 성자씨는 입주 작가의 밥상을 준비하고 안팎 청소 일을 한다. 누구는 할머니라 부르고 누구는 아주머니라 부르지만 나는 성자씨라 부른다. 성자씨라 하면 수줍은 듯 짓는 미소가 평사리 들판으로 쏟아지는 가을햇살처럼 환하다.
성자씨의 일은 작가들의 뒤치다꺼리다. 집필실의 이부자리를 개키고 방을 치우고 세면장을 청소하고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운다. 아무리 깨끗하게 쓸고 닦아도 바람이 불면 모래와 먼지가 쌓이는 한옥의 마루가 늘 빛나는 것은 성자씨의 바지런함 덕분이다.
고뇌하는 작가들이 밤새 온갖 고성방가를 쏟아놓아도 성자씨의 손이 지나가면 이내 편안한 듯 고요해진다. 어젠 성자씨와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박경리 선생님'이란 표현을 써 깜짝 놀랐다. 성자씨는 박경리 선생을 만난 적이 없는데 우리 박경리 선생님이라니! 그때서야 나는 성자씨가 소설 <토지> 속의 평사리를 윤이 나도록 반짝반짝 닦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토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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