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최근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다. S&P의 최고경영자(CEO) 데븐 샤르마는 미국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자, "국가나 기업의 신용등급을 내릴 때면 언제나 나오는 반응"이라며 담담하게 맞섰다. 샤르마는 오히려 한술 더 떠 "앞으로 2년 안에 미국 정부가 계획한대로 재정지출을 줄이지 못하고 부채가 우리의 전망보다 커진다면 추가 강등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 출신으로 대학까지 인도에서 나온 그는 최근 세계 금융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이다.
미국발 금융쇼크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한 직후 세계적 투자은행인 씨티그룹 임직원들을 다잡고 나선 CEO 비크람 판디트도 인도 출신이다. 그는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위기의 원인과 파장을 놓고 볼 때 지금과 2008년 금융위기는 유사성이 거의 없다. 우리는 3년 전과 비교해 체질이 강해졌다"며 냉철한 판단력으로 직원들의 동요를 잠재웠다. 그는 CEO 취임과 동시에 "씨티그룹이 수익을 내기 전까지는 보너스 없이 1달러의 연봉만 받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회사 측은 향후 4년간 2,000만달러가 넘는 연봉과 보너스를 약속했다.
세계 곳곳에서 인도 출신 기업인들의 활약이 뜨겁다. 세계적인 식품ㆍ음료기업 펩시코의 여성 회장 인드라 누이, 세계 2위의 식품업체 크래프트 푸드의 산자이 코슬라, 구글의 수석부사장 겸 최고비즈니스 책임자 니케시 아로라, 워런 버핏이 만든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아지트 자인 등이 모두 인도 출신이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는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CEO', '경영의 새 트렌드는 인도에서 나온다'고 평가했다.
인도 출신 CEO들이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기획재정부는 21일 '인도 출신 CEO의 부상과 주가드(jugaad) 경영' 자료를 통해 인도인 특유의 경영방식에 주목했다. 주가드는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에서 창의력을 신속하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의 힌두어다. 공장 하나를 설립하려면 80개 기관에서 인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열악한 인도의 기업환경과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미흡한 인프라 속에서 몸으로 익힌 인도 CEO들의 생존방식을 의미한다.
'5,000달러 이하 자동차는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통념을 깨고 2009년 10만루피(약 280만원)짜리 자동차 나노(Nano)를 인도에 출시한 타타그룹은 주가드 경영의 좋은 본보기다. 저소득층의 낮은 구매력을 감안해 라디오, 파워핸들 등 고가 사양을 뺀 라탄 타타 회장의 전략은 미국 최고 혁신상인 '에디슨 어워드'에서 2010년 금상을 받았다.
재정부는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시대에 인도 출신 CEO들은 유연한 사고력과 신속한 위기 대응력, 그리고 윤리경영마인드까지 갖췄다"면서 "'기업은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인도 CEO들의 경영 마인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현 시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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