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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우의 공감] 이상우 영화감독 "창녀·개·쓰레기… 내 영화의 제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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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우의 공감] 이상우 영화감독 "창녀·개·쓰레기… 내 영화의 제목들입니다"

입력
2011.08.1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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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 '변태'가 나타났다. 이상우(40) 감독이 주인공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제목부터 역겹다.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 '나는 쓰레기다' 등등. 제작비가 1,000만원도 안되는 이 영화들은 국내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국제영화제에서는 제법 호평을 받았다. 극단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일까. 그가 살아가는 방식도 특이하다. 영화를 찍다 빚을 져 사채업자에게 협박을 받고 산다. 미국 LA에서는 사고를 당해 한쪽 눈과 한쪽 귀를 상했다. 돈을 벌기 위해 보모 일부터 시작해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한다. 그러다 200만~300만원만 모이면 다시 영화를 찍기 위해 달려든다. 영화에 미쳐있는 그를 만났다.

_ 왜 영화를 하나.

"어린 시절 일과가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종로로 가서 영화 전단지를 모으는 것이었다. 이 전단지를 생명의 일부로 생각했다. 지금은 전단지가 흔하지만 당시는 극장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전단지와 포스터 모으러 돌아다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종로와 을지로 등 극장 주변을 다녔다. 또 스포츠신문에 영화광고 난 것들 오려서 모으는 것이 일과였다. 초ㆍ중학교 시절 내내 영화 전단지와 신문광고 스크랩하느라 시간 다 보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영화를 보다 너무 재밌어서 만들어보고 싶었다. 초ㆍ중학교 때 성인영화도 부지기수로 봤다. 집 근처 망우동에 15개 정도 극장이 있었다. 영화를 하도 보니까 부모님이 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돈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영화를 봤다. 당시 신문사에서 만든 잡지에 영화쿠폰이 붙어있었다. 영화를 개봉하면 관객몰이를 하려는 것이었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서점에 가서 쿠폰을 슬쩍슬쩍 찢었다. 10장 정도 모이면 이걸 팔기도 했다. 당시 영화표가 2,000원쯤 했는데 만화방 같은 데서 쿠폰을 1,500원 정도에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 부모님은 내가 영화를 무슨 돈으로 보는지 궁금해했다. 주로 개봉관에서 많이 봤고, 놓친 영화는 다른 극장에서 봤다. 통상 일주일에 10편 이상은 본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영화사 연출부에 들어가고 싶어서 이장호 감독을 쫓아다녔다. 당시 이 감독은 판영화사를 운영했다. 고등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웬 연출부냐고 하셨다. 하지만 결국 고3 때는 배우를 했다. 황규덕 감독의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1990)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러니까 영화판에 발을 일찍 들여놨다."

_ 공부는 안했나.

"공부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4수까지 했다. 극장에서 살다 보니 공부를 잘했을 리 없다. 4수까지 하다 군대 끌려가서 제대 후 한 달 만에 미국으로 갔다. 당시에도 여전히 학벌사회였다. 공부는 안했지만 대학은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안받아 주니까 미국으로 갔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한국에서 4수 해도 대학에 못갔는데 미국에서 어떻게 대학을 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또 미국 가서 맨날 영화나 보고 살 게 뻔하니 가지 말라고 하셨다. 진짜 반대가 심했다. 근데 방위 시절 돈을 제법 벌었다.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경계병이었다. 쉬는 날은 청계천 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시간당 4,500원을 벌었다. 지금과 비교할 때 큰 돈이었다. 200만원 이상을 모았다. 그걸로 미국 대학 수속하고 비행기 표까지 살 수 있었다."

_ 특히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이상한 영화를 찍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변태 취급을 하는데, 실은 '사랑과 영혼'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좋아했다. 1982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ET'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사랑과 영혼'은 20번 이상 본 것 같다. 판타지 멜로 영화, 눈물 짜는 영화 좋아한다. 나도 잘 운다. 누가 죽었다고 하면 펑펑 운다. 한 번은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빈소에 갔는데 호상이라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나는 그게 너무 슬퍼서 한 시간 동안 펑펑 울었더니 오히려 친구가 말렸다. '나도 안 우는데 넌 왜 우냐'고 그랬다. 감정이입을 잘 하는 편인 것 같다. 만약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괜히 운 것이다. 이쪽 바닥에서 뒤통수를 많이 맞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 '나를 버리지 않을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든 영화는 늘 엄마에 미쳐 있다. 주인공들이 엄마의 사랑을 너무 갈구하고 있다. 극단적일 정도다."

_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는 뭔가.

"2002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 영화판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영화사를 옮겨 다녔다. 하지만 1년에 수입이 10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어떻게 살 수 있었겠나. 시나리오도 부지기수로 썼다. 여기저기서 '입봉'시켜 준다고 했다. 감독 데뷔를 말하는 거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경우는 없었고, 이렇게 하다가는 평생 영화 한편도 못 찍겠구나 싶었다. 2007년에 필리핀으로 가서 '트로피컬 마닐라'를 찍었다. 이것도 너무 힘들게 찍었다. 시나리오가 워낙 세다 보니 한국에서는 투자가 안됐다. 필리핀에서 영화사라는 영화사는 다 찾아다녔다. 돈 많다는 분들도 다 찾아다녔다. 결국 필리핀 신문에 이상우라는 사기꾼을 조심하라는 기사가 크게 났다. 내가 봉준호 감독처럼 유명한 것도 아닌데 투자 받으러 다니다 보니 사기꾼으로 몰린 것이다. 결국은 국내에서 사채를 받아 가지고 갔다. 일단 벌려놓고 본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린다. 결국 부모님께 울면서 얘기해 일부 갚았다. 손가락 잘릴 수도 있다면서. 이후 조금씩 갚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5~6가지씩 했다. 통상 6개월 정도 잠도 줄이고 일을 한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다시 6개월 간 영화를 만든다. 실은 '트로피컬 마닐라' 이전에도 장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9개월 간 찍었다. 샌프란시스코와 라스베이거스가 배경이다. 미주한국일보에서 취재도 하고 대문짝만하게 여러 번 기사도 났었다. 하지만 별로 반응이 안좋았다. '트로피컬 마닐라'는 필리핀에서 촬영했고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신고식을 하고 밴쿠버, 시드니, 일본 등으로 갔다. 영화가 좀 셌다. 성기도 자르고 정액도 뿌리는 내용이다. 이 영화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세다는 것은 다 건드렸다. 한국 사람도 나쁘게 묘사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영화 속 실패의 주인공과 오랫동안 살았다. 다행히 영화제에서 반응이 좋았다. 올해 개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잡다한 영화를 찍었지만 올해가 피크다. 영화를 찍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_ 영화계에 발을 들인 것은.

"고3 때, 배우로 발을 들였다. 문성근이 주연한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에서다. 유일하게 그 영화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정재영이다. 오디션에 600명쯤 지원해 15명이 뽑혀 조연을 맡았다. 정재영도 그 중 한 명이다. 하이틴 영화였다. 문성근씨가 심사했다. 어떻게든 영화쪽 일을 하고 싶었다. 재주를 보이라고 해서 춤과 노래를 하다 너무 오버했다. 소방차 노래를 불렀는데 덤블링을 너무 크게 하다 허리를 다쳤다. 그게 불쌍해서 뽑아준 것 같다. 주연을 하고 싶었으나 조연이었다. 그 이후 이장호 감독 많이 따라다녔다. 이규형 감독도. 이규형 감독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가 뜨고 나서 다음 영화 찍는다고 해서 이 감독 집에 가서 며칠씩 밤을 샜다. 수해가 많이 난 적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영화배우들이 왔던 일일 포장마차에서 봉사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때 눈에 띄어 이장호 감독 영화사서 청소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발탁이 안됐다. 아마 날 기억하지도 못하실 것 같다. 지금은 영화제에서 가끔 뵙는다."

_ 미국 유학은 어땠나.

"4수 하고 군대에 있을 때, 학벌 컴플렉스가 심했다. 누가 '어느 학교 다니냐'고 물었다. 그때 지방대학을 다닌다고 거짓말을 쳤다. 하지만 너무 창피했다. 1년6개월 동안 발각될까 봐 공포에 떨었다. 지금 학력 위조한 사람들 보면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굳이 학력을 위조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그때는 자존심이 허락을 안해서 그랬던 것 같다. 공부는 군대에서도 꾸준히 했다. 수학은 포기했고 영어는 계속했다. 군 말년에 유학 준비도 했다. 제대 후 미국 시애틀에서 아트스쿨을 다녔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영향도 있었다. 시애틀이 너무 좋았지만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다. 하도 영어가 안되고, 정규 대학은 들어가지도 못한 상태였다. 친구가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어머니 같은 분이 친절하게 상담을 해줬다. 자살 방지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그분은 푸근하게 대해주면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너무 공부도 안되고 답답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을 했다. 그랬더니 1분도 안돼 엄청 덩치좋은 사람들이 침대를 가지고 들어와 나를 침대에 묶고 정신병원으로 끌고 갔다. 거기서 마약사범, 알코올중독자 등과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는 시애틀을 떠났다.

더 좋은 학벌이 필요했다. 다시 공부 열심히 해서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영화과에 들어갔다. 정말 열심히 했다. 졸업도 7학기 만에 했다. 학비는 식당에서 보조로 일하면서 벌었다. 먹는 것도 여기서 해결했다. 또 독거 할머니 집에서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말벗해주면서 공짜로 잠을 잤다. 엄청 좋은 집이었다. 그 할머니 가정부 노릇을 한 것이다. 식당 웨이터도 했다. 팁이 많았다. 부모님이 몇 번 돈을 보내 주셨고 나머지는 내가 벌었다."

_ LA에서는 큰 사고가 있었다면서.

"2000년 LA에서 공중전화로 어머니와 통화하고 있었다. 공중전화 위에 담뱃갑 같은 것이 있어서 옆으로 밀었다. 근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났다. 동네가 떠나갈 정도였다. 누가 전화기를 폭파해서 동전을 꺼내려고 폭탄을 설치한 것이다. 몸이 날아갔다. 피투성이가 됐고 한쪽 눈은 보이지도 않았다. 내 인생이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 기어서 동네까지 걸어가서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병원으로 실려가 3개월 동안 있었다. 배에 파편도 들어갔고, 병원에서는 실명할 것 같다고 했다. 집에 전화도 못했다. 걱정할까봐. 나중에는 불꽃놀이하다가 그랬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니 영화도 찍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 자살 생각이 났다. 한 달 만에 범인이 잡혔는데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 사건이 무지 컸다. 지역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나는 눈 한쪽과 귀 한쪽을 못쓴다. 귀 한쪽에서는 계속 이명 현상이 있다. 한국에서 용하다는 병원은 다 다녔는데 결국 못고쳤다. 병원에서 불치병이라고 했다. 일년쯤 지나니까 견딜 만했다. 아직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그러면 좀 나아진다. 아무튼 갑갑하다."

_ 뭘 먹고 사나. 보모도 한다면서.

"'바비'를 찍기 전에는 장편 9편을 찍었다. 영화제만 간다고 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 보통 한 편은 자기 돈으로 찍는다. 사채 쓰고 하다 보니 거지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보모, 번역도 한다. 주말에는 CF도 찍는다. 별 걸 다 한다. 돈 되는 것이면 다 한다. 안하면 살 수가 없다. 사채 빌린 것은 잘 갚아나가고 있다. 다행히 '엄마는 창녀다' 가 잘 나가고 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제목 때문에 낚여서 그런지 돈이 된다. 수익이 억대로 났다. 극장에서 상영할 때는 돈이 안됐다. 이 영화는 총 580만원이 들었다. 통상 영화 한 편 찍는데 몇천만원에서 억대 이상 들어간다. 영화제에서 몇 번 상 받았더니 유명세를 탄 것 같다. 대만에서도 개봉됐다. 미국에서는 내년에 개봉한다. 580만원짜리가 톡톡히 돈이 됐다. 말도 안되는 액수라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아침밥을 다 해서 스탭들 먹인다. 8년 간 식당일을 했기 때문에 음식은 잘한다. 영화 찍고 배우도 하고 밥도 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절약을 한 거다. 얼마 전에는 몸이 불덩이가 되어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사실 '트로피칼'을 만들면서 사채를 끌어댔다가 빚을 져서 다시는 영화를 찍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탭들에게 사정사정하면서 봐달라고 했다. 영화를 계속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밥 사주고, 차비 조금씩 주고. 출연료는 거의 없다. 주연 두 분에게는 하루 20만원씩 줬다. 그것만 150만원 정도다. 부모님이나 지인들이 가끔씩 와서 밥을 사줬다."

_ 영화 찍는 데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하나.

"한 달 이상 먼저 일을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모은다. 300만원의 여유만 있으면 바로 영화를 찍는다. 무조건 시작한다. 촬영을 진행하다 보면 돈이 생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얼마 주고, 영화제에서 상 받은 것, 대만에서 상영된 것 등 100만원 정도씩 만들어진다. 그걸로 나머지를 버틴다. 돈이 떨어질 만하면 아르바이트도 들어온다. 10~20만원 생기면 스탭들 밥 사준다. 그런 식이다."

_ 결혼은 했나.

"못했다. 어떤 미친 여자가 나한테 오겠냐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아이를 좋아한다. 애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한다. 영어도 좀 가르치고. 선은 많이 봤다. 그분들도 신기해 한다. 저렇게도 사는 사람이 있구나. 재미있어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결혼하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불행해질 것 같아서 거절했다. 돈만 생기면 영화 찍고 하는데 어떻게 같이 살겠나. 입양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혼자 사는 남자는 입양이 안된다더라. 애가 있으면 촬영장에 늘 데리고 다닐 생각이다."

_ 영화 얘기 좀 해보자. 영화에 역겹고 더러운 요소들이 많다는 평가다. '더러운 진실'이라고 하거나.

"영화에 끌어온 소재는 모두 실화를 근거로 한다. 단순한 실화는 재미없으니 거기에 유추를 해서 극적인 요소를 만든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뉴스는 실제 뉴스에서 따온다. 돈이 없어서 아나운서를 고용하지 못한다. '엄마는 창녀다'도 실제 정신박약인 아들이 엄마에게 몸을 팔게 한 뉴스를 보고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포털에서 거의 테러 수준으로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차피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평가가 극과 극이다. 10점 아니면 0점이다. 5와 같은 중간은 전혀 없다. 역겹다는 사람, 어느 미친 놈이 이런 걸 만들었나, 라는 반응도 많다. 상당기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영화에서 내가 직접 포주로 나온다. 전단지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놨다. 영화를 보고 전화하는 사람이 많다. 감독이 맞는지 확인하는 전화다. 그들과 계속 통화를 한다. 며칠 전에는 어떤 분이 '영화를 보?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면서 돈을 30만원이나 보냈다. 이 영화가 꼭 불편한 생각만 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세상의 아들들이 엄마를 사랑한다는 감정만 가진다면 이 영화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엄마를 창녀로 부려먹으면서 어떻게 모성애를 떠올릴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영화에 섹스신도 전혀 안 나온다. 더럽고 역겨운 요소들을 영화에 이용한 것도 맞다. 원래는 '삼겹살'로 이름을 붙이려 했다. 또 영화관에서는 '엄마 이야기'로 하면 상영하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서울에서는 단 한 군데서만 개봉했고 지방까지 합치면 6곳에서 상영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한달간 5,000만원 이상 벌렸다. 독립영화가 이런 대박을 치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한다."

_ 영화에 질병, 망가지는 가족, 변태적인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가정사에 대한 얘기가 많다. 사실 우리 집안은 문제가 없다. 아들 하나지만 집에 돈 벌어다 줘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 부담이 없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순탄하게 살았다. 방황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문제가 있었을 거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나 전혀 그런 것은 없다. 단지 영화만 보러 다녔을 뿐이다. 역겨운 내용을 주제로 잡은 것은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다. 천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영화를 찍는데 이런 방법밖에는 없다. 극단적인 요소를 많이 넣는다. 말도 안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화에 근거한다. 이번에 찍는 '바비'는 초등학생도 볼 수 있는 영화다. 투자자가 있다. 1억원 이상 들어가는 영화다. 하지만 투자를 받아서 하기 때문에 내게 별다른 수입은 없다. 더 이상 사채는 안 쓰고 싶다."

_ 시나리오는 언제부터 썼나.

"내가 '의'와 '에'를 구분 못할 정도로 맞춤법을 모른다. 따로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시나리오를 빨리 쓴다. 고등학교 때부터 썼다. 군대에 있을 때 썼던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에 응모했는데 장려상을 받았다. 신이 나에게 공부 능력은 안 줘도 이런 능력을 줬다고 생각한다. 장편 시나리오 쓰는 데 빠르면 이틀, 길면 일주일 걸린다. 6년 간 쓴 시나리오가 100개쯤 된다. 예전에 썼던 것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독립영화만 만들었다. 시나리오를 시작하면 일주일 정도 꼼짝도 않고 쓴다. 사고를 친 경험이 많다 보니 시나리오가 쉽게 써지는 것 같다. 작년에는 술 먹고 길바닥에서 잠들었다가 병원에 실려갔다. 자동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간 것이다. 뼈가 다 으스러졌다. 병원에 꽤 오래 있었다. 유일하게 스트레스 푸는 것이 술이다. 잡기는 안한다."

_ 스스로의 작품세계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상업영화를 준비한다. 판타지 멜로 등을 생각하고 있다.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 만든 영화는 마니아들만 좋아한다. 광주의 한 영화관에서는 800석짜리에 단 2명이 온 적이 있다. 그때 너무 역겨운 영화는 앞으로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판타지, 코미디 등 다양하게 장르를 구성하고 싶다. 개인투자자들에게서 전화가 많이 온다. 하지만 최근 막강한 분을 만났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사장이다. '바비'도 그렇고, 그 다음 영화도 그분이랑 할 것 같다."

_ 영화를 너무 많이 찍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많이 찍다 보니 영화를 만드는 데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잠도 별로 안자고 누굴 만나지도 않는다. 영화 외에는 아무것도 안한다. 오로지 영화만 한다. 시나리오는 엄청 준비되어 있다. 다른 감독들은 제작 준비도 30명 정도가 하지만 나는 혼자 한다. 촬영 당일에 스탭들을 부른다. 마무리 작업 역시 혼자 한다. 장소 헌팅도 하루 이틀만 하면 된다. 그래서 1년에 4편 이상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1년에 한 편도 찍기 힘들다."

_ 엄마, 아버지, 나로 이어지는 주제로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뭔가. 가족애인가.

"한국은 가족중심이다. 사회적인 이슈보다는 가족에 대한 이슈, 가족에게 생길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을 그려낸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많이 갖는다. 특히 아버지는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실제 아버지랑 관계가 묘하다. 예전에는 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어서 대화가 전혀 없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나이 드시니까 나만 찾는다. 지금은 오히려 엄마보다 아버지랑 애틋하다. 주로 아버지를 악마로 그린다."

_ 본인이 직접 출연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다 주연을 한다. 내가 유명 배우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다. 주인공을 캐스팅하면 돈이 필요한데 줄 돈이 없다. 주변에서 자기가 주인공 해주겠다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차비 줘야 하고 밥값도 들어간다. 밥값과 차비도 안줄 수는 없다. 그래서 직접 한다."

▦이상우 감독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청량고를 졸업하고 대학 연극영화과에 가기 위해 4수를 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방위병으로 복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2002년에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영화과를 졸업했다.

2008년 첫 장편영화 '트로피컬 마닐라'가 각종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덕분에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두 번째 장편영화 '엄마는 창녀다' 역시 홍콩국제영화제(2010), 리옹아시아영화제(2010)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난 2월 세 번째 장편영화 '아버지는 개다'로 스위스블랙무비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최근 장편 '지옥화' '바비' 를 마무리, 9월 열리는 영화제에서 상영한다. '나는 일본영화가 아니다'는 촬영 중이고, '나는 쓰레기다'는 9월에 촬영한다. '나는 쓰레기다'는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에 이어지는 '가족 3부작'이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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