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야구팬들의 진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야구팬들의 진화

입력
2011.08.19 12:02
0 0

중학생 때니까 1970년 언저리다. 일요일이면 자주 친구들과 지금은 없어진 서울 동대문운동장엘 갔다. 실업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중학생 용돈으로 감당할 정도였으니까 입장료는 거의 공짜 수준이었을 텐데, 관중은 1ㆍ3루 주변에만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 3게임은 기본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외야에 까까머리 몇이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김응용, 박영길, 김우열, 김차열, 한동화 등 당대 전설들의 경기를 즐겼다. 인기가 엄청났던 고교야구는 표를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선택한 야구 즐기기 차선책이었다.

■ 실업야구보다 고교야구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던 건 아마 고교팀의 지역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산, 대구, 광주 등의 고교야구팀들에는 내 고향팀이라는 강력한 유인(誘因)이 작용한 반면 한일은행, 제일은행, 농협, 철도청, 육군, 해병대 등 실업팀들에 대해선 대부분이 별 정서적 연고를 느끼지 못한 때문이었다. 별달리 즐길 거리가 신통치 않았던 70년대 전후 경북고와 대구상고, 부산고와 경남고, 광주일고와 군산상고 등 몇몇 고교팀과 선수들의 인기는 요즘 프로팀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확실히 경기엔 열광했으되 야구 자체를 즐긴 건 아니었다.

■ 수준으론 딱 실업야구의 연장인 프로야구가 처음부터 폭발적 인기를 끈 것 역시 지역연고제가 결정적 이유였다. 86년 10월 대구에서의 한국시리즈 3차전 해태-삼성전에서 역전패한 관중들이 격분, 해태구단 버스에 방화한 사건도 이런 정서의 극단적 표출이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은 질적 전환으로 이어지는 법. 이제 야구팬들은 경우의 수가 워낙 많고 복잡해 거의 신의 영역이라는 야구 규정에서부터 선수정보까지 꿰뚫고 야구를 즐긴다. 실제로 지난해 프로야구장을 찾는 이유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야구 자체가 좋다"는 응답이 절반에 육박했다.

■ 인터넷과 SNS로 야구팬들의 진화엔 가속도가 붙었다. 즐기는 입장을 넘어 점차 동참자, 감시자로서 스스로를 팀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여기는 추세가 뚜렷하다. 얼마 전 아름다웠던 두산 팬들의 김경문 감독 퇴임광고나 이후 감독 교체와 성적 부진에 대한 롯데 팬들의 무관중운동 시도, LG감독 청문회 요구 등이 다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최근 김성근 감독 경질에 대한 SK 팬들의 격렬한 반대의사 표출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회 일반의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진대 글쎄, 어디까지가 바람직한 진화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