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다인종들이 모여사는 미국에서는 백인이 주류민족이다. 유색인종은 모두 소수민족으로 불린다. 미국에서 인종간의 갈등이 치열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류민족인 백인이 유색인종들을 피해 백인들만 사는 지역으로 자꾸만 옮겨간다고 한다. 그래도 유색인종이 싫으면 백인들만 사는 도시로 아예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얼마 전 만난 미국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지인의 말이다. 그렇다고 백인들이 유색인종이 무서워서 도망 다니기에 급급한 피해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는 유색인종이다.
여전히 이중적인 다문화 잣대
백인들이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을 나타내는 표현이나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은 강력한 인종차별금지법 때문이다. 인종차별금지법이 강력할 수 있는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법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에 흑인들의 피와 목숨이 그대로 배어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말 미국에서 시작된 민권운동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투쟁역사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투쟁과 희생을 치른 다음에 비로소 법적으로는 모든 민족이 공존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의 원인이 반(反)다문화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졌다. 최근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도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늘어난 실업률이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차별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궁극적으로 영국정부의 이민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남의 일로만 치부할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체류 외국인은 126 만 명이나 된다. 전체 인구의2% 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지속적으로 다문화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황은 더욱 더 심각해진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1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출신국가, 민족,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며 진정서를 제출한 경우가 230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에서 출신국가 때문에 차별 받은 건수가 213건, 출신 민족과 피부색 때문인 것이 각각 10건, 7건 이었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편견과 일천한 제도적 장치를 감안하면 신고되지 않은 건수가 얼마나 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신고해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차별당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동남아출신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양인을 대하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우리의 이중성을 보는 것 같다. 각자 마음속에 사대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지 반문해 볼 문제다. 우리는 출신 국가의 경제 수준을 잣대로 외국인을 평가해 버린다.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위 국가들에 비해 결코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숱한 난관을 극복한 당당함이 몸에 배어 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거주하거나 정착하는 것이 반드시 그들의 필요만은 아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온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우리의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우리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면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종차별금지법 제정 서둘러야
통계적으로 2050년대가 되면 우리는 완전한 다문화 국가가 된다. 지금이 외국인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절실한 시기이다. 인종차별금지법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그들을 우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적 대접을 해주는 차원으로 가야 한다. 우리 민족의 반 이상이 불교와 기독교인이다. 두 종교의 원리는 자비와 사랑이다. 외국인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은 이미 갖추고 있다.
이윤범 청운대 베트남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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