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노르웨이의 보건의료와 약가제도를 살피려 오슬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노르웨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약 10만 달러로 우리나라의 5배다. 하지만 회의실에서 지급해준 필기구마저 쓰던 것일 정도로 검소했다. 노르웨이는 엄청난 물가로도 유명하다. 택시요금은 기본 2만 원에 km당 요금도 우리의 3배 이상이다. ‘주말에 인접 스웨덴에 가서 장을 본다’는 말이 실감났다. 따라서 약값도 우리보다 훨씬 비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구매력 지수를 보정해 비교하면, 노르웨이는 복제약(제네릭) 가격이 우리의 40%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보다 월등한 소득수준과 살인적 물가지만 의약품은 우리의 반값도 안 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한 현지 보건당국의 대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노르웨이는 신약 약가를 아일랜드, 벨기에 등 소득수준이 평균 54%정도인 서유럽 9개 국가의 약가 중 가장 낮은 3개국 약가의 평균으로 결정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불과 5년전 까지만 해도 소득수준이 평균 215%나 높은 선진 7개국의 약가를 참조하여 정했다. 현재는 신약등재 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와의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하고, 비교범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로 넓혔지만 약가는 여전히 높다. 둘째는 복제약 의약품 가격산정방식의 차이이다. 노르웨이의 복제약 가격은 규모의 경제 원리가 적용돼 인하율이 해당 성분의 매출액에 따라 정해지고, 55~85%까지 약가가 인하된다. 이로 인해 연 4,000억 원의 약제비 절감효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특허 만료된 신약은 20%, 복제약은 32%의 인하율을 적용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물론, 오스트리아의 60.2% 인하율보다 크게 못 미친다.
우리나라의 보험약품비는 건보 지출액의 29.3%(지난해 12조8,000억원)나 차지했다. 국민 전체 의료비 지출에서 약제비 비중도 2008년 22.5%로 OECD평균(14.3%)보다 훨씬 높다. 유럽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겪었으며 급증하는 약제비 억제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써왔다. 동일성분ㆍ동일효능 의약품에 대해 보험급여액(참조가격)을 정하고, 그보다 비싼 약 사용 시 초과액을 환자가 부담하는 참조가격제가 대표적이다.
최근 정부가 약가인하 계획을 발표하자 제약업계는 지나친 약가인하가 연구개발(R&D)을 위축시켜 신약개발의지를 꺾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높은 약가 혜택을 누리면서 제약사들은 과연 얼마나 R&D에 투자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현재 68개 상장제약사의 R&D 투자액은 총 6,219억 원으로 매출액의 6.3%에 불과하다. 주요 다국적사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판매관리비도 너무 높다. 최근 리베이트 제공이 적발돼 약가인하 통지를 받은 제약사 9개 중 7곳은 최근 3년간 판매관리비가 무려 매출액의 42.6%였다.
지금까지 복제약 영업위주의 후진적 경쟁체계와 R&D 투자부족의 행태를 반복하며 국내시장에만 안주하지 않았는지 자성이 절실한 때이다.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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