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스기야마 토미'“조선 아이 일본인 만들려던 죄의식에 괴로웠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스기야마 토미'“조선 아이 일본인 만들려던 죄의식에 괴로웠다”

입력
2011.08.19 05:29
0 0

스기야마 토미/혼마 치카게 기록·신호 옮김/눈빛 발행·320쪽·9,000원

"사실 저는 한국사람들의 친절이라든지, 호의는 엄청나게 받았지요. 하지만 저 자신은 별로 갚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갚기는커녕 엄청난 과오를 범하면서 일본인을 만들려고 힘을 쏟았지요."

<스기야마 토미> 는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이 한국민중생활사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눈빛출판사를 통해 내놓았던 '한국민중구술열전' 시리즈의 하나다. 민중의 삶과 기억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육성으로 되살려낸 이 프로젝트가 2008년 4년에 걸쳐 46권 46명의 열전을 마무리할 때까지 구술 받은 사람은 당연히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마친 뒤 3년 만에 별책으로 낸 이번 구술의 주인공은 '식민지 조선'을 체험한 일본인이다. 스미야마 토미(90)씨는 1921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대구서 여고를 마치고 서울의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대구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일본으로 갔다. 연구단장인 박현수 영남대 명예교수는 "그들을 한국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근현대 민중생활사에 크게 영향을 준 만큼 한국 생활사 이해에도 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했다.

이 구술은 연구단이 2003년부터 3년 동안 일본 규슈(九州)대 연구진과 함께 일본에 생존하는 강점기 한반도 경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포괄적인 조사가 기초가 됐다. 일본에서는 점령지에서 살다 전후 귀국한 사람들을 '히키아게샤(引揚者)'라고 하며 은근히 차별하는 문화가 있었다.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옅어졌는지 이들의 자비 전기 출판도 유행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연구 성격을 띤 이런 일본인 구술 기록이 나오기는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단은 어렵사리 3명의 구술을 받는 데 성공했고 일본 중부 도야마(富山)현에 사는 스기야마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스기야마씨는 2007~2009년에 진행된 수 차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공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는 자각이 있었나'는 질문에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그가 살던 대구 중심가는 거의 일본인뿐이었고, 커가는 동안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이른바 '내선일체' 교육 일색이어서 그냥 '일본 땅'이라는 느낌으로 살았다고 한다.

구술 속에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던 해 달성의 초등학교에 부임했을 때 천황에 대한 충성 교육, 분열 행진 등 전쟁 교육에 열중하던 학교 풍경은 물론 초등 6학년생을 정신대에 가도록 열심히 권유하는 동료 교사 이야기도 등장한다. 일본이 항복한 뒤 제자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무사히 일본에 간 스기야마씨는 귀국 당시 학생에게서 받은 편지에서 조선 독립을 기뻐한다는 내용을 볼 때까지 조선 사람들이 독립을 간절히 바랐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쟁에 동조하여 순수한 한국 아이들을 무리하게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한" 과오가 가슴에 사무쳐 그는 일본에서는 교직을 포기했다. 주변의 설득으로 다시 장애인 교육에 애썼고 한일친선교류사업에도 참여해온 그의 개인사에서 한일의 일그러진 과거와 희망적인 미래가 교차하는 듯도 하다. 이어 나올 두 권은 지금 역시 90세 전후로, 각각 서울과 전북 김제 인근에서 살았던 이마오카 유이치(今岡祐一), 이노우에 히로시(井上博) 할아버지의 구술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