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김모(34)씨는 최근 아들 선우(4ㆍ가명)가 자꾸 "배 고프다"며 칭얼대길래 어린이집 식단을 확인했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죽이나 주먹밥이 오전 간식으로 나와 아침밥을 대신했지만 이번 달에는 제철과일이나 미숫가루뿐이었다.
선우가 다니는 A어린이집은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 아침밥을 못 먹고 온다는 것을 배려해 죽 등을 오전 간식으로 줬다. 하지만 지난 달 이 어린이집을 점검한 서울시가 자체 식단 대신 보육정보센터의 식단을 따르라고 한 것. 김씨는 "맞벌이 때문에 오전 7시30분에 아이를 등원시키는데 언제 아침밥을 먹이겠느냐"며 "아동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서울시 식단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성토했다.
영유아보호법은 자체 영양사가 없는 아동 100인 미만의 어린이집은 보육정보센터가 제공하는 식단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든 어린이집이 영양 균형이 잡힌 식단을 제공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 식단이 아이들이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는 것을 전제로, 만 3~5세 유아의 하루 섭취 권장량(1,400kcal)의 50%만 제공하도록 짜였다는 것. 아침도 못 먹은 채 길게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맞벌이 가정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은 식단이라는 지적이다.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싸서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맞벌이 부모들이 칼로리 따져가며 도시락을 싸기도 어려울뿐더러 위생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맞벌이 주부 안경림(33)씨는 "친구는 자녀에게 도시락을 싸주는데 여름엔 음식이 상하기도 쉽고 먹다 남은 음식이 도시락통에 쉬어 있을 때마다 불안해한다 하더라"라고 말했다. 아침을 먹이는 경우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안씨는 "네 살짜리 아들에게 아침 7시에 밥을 먹이면 아이가 눈을 감은 채 밥을 먹는다"며 "너무 이른 시간에 억지로 밥을 먹이는 것이 몸에 좋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간호사 김씨의 민원으로 서울시 보육정보센터는 A어린이집이 센터의 감수를 받은 자체 식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침을 먹지 못하는 아동들도 있겠지만 평균적인 아동들은 아침을 먹는다고 가정하고 급식 예산을 편성, 이에 맞춰 보육정보센터 등이 식단을 짠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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