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만에 아버지 묘지에서 제사를 지내 작은 한(恨)을 풀었지만 유해 송환이라는 큰 고비가 남아 있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광복절인 지난 15일 러시아 사할린주 코르사코프 공동묘지에 묻힌 아버지 묘지를 방문하고 귀국한 류연상(68)씨는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는 18일 기자와 만나 “정부가 징용자 묘지 찾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유가족들을 생각해 유해 송환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호소했다.
류씨는 두 살 때인 1945년 2월 아버지 류흥준(당시 24세)씨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됐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사도 모르고 있던 류씨는 76년 6월 “아들아 보아라”로 시작되는 첫 번째 편지를 받으면서 드디어 아버지가 사할린에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기뻤던 류씨는 아버지에게 계속 답장을 보냈으나 아버지로부터 편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가 77년 초 보낸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라는 편지가 끝이었다.
이후 아버지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몰랐던 류씨는 최근 사할린을 방문해 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류씨는 “묘지에 비석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영영 못 찾을 뻔했다”며 “사할린에 있는 21개의 공동묘지에는 강제 징용된 한인들의 묘지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석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아버지 묘지를 방문한 감격도 잠시. 류씨는 앞으로 남은 유해 송환을 생각하자 얼굴빛이 이내 어두워졌다. 남편과 헤어진 후 60년 넘게 재가하지 않고 홀로 지내 온 어머니 라준금(86)씨의 소원이 남편 곁에 묻히는 것이지만 유해 송환엔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두고 강제 징용자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사할린 공동묘지 제1구역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2008년 1차 유해 표본 조사 과정에서 580기의 한인 징용자 묘지도 확인했다. 위원회는 21개 공동묘지를 모두 조사하고 유족 확인을 거쳐 송환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위원회 관계자는 “예산 부족과 묘지 전수 조사 기간, 러시아 정부와의 송환 협상 등을 감안하면 적어도 5년 동안은 유해 송환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속이 탄 류씨는 위원회 측에 사업비의 일부분은 유해 송환에 사용하고 나머지만 유해 조사에 사용하자는 건의도 했다. 류씨는 “위원회에서 먼저 조사가 끝난 부분은 유해 송환을 추진하면서 조사를 병행하는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지난해 신청한 예산 6억8,000만원이 국회 예산안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고 올해 긴급예산 7,000만원으로 공동묘지 제1구역 전수조사만 겨우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해 송환에 기약이 없는 셈이다.
류씨는 “사할린에 끌려간 징용 1세대의 한을 풀고 가족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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