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보기술(IT)업체들의 특허전쟁이 가열되면서, 특허를 보유한 기업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허확보를 위해 아예 기업을 통째로 사려는 경쟁까지 가열되면서 인수합병(M&A)시장도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M&A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사업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최근엔 기업 자체보다는 특허를 목적으로 M&A를 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며 "사실상 특허 무한전쟁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외신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발표에 이어 애플과 퀄컴, 삼성전자 등 세계 IT 업계의 '큰 손'들이 대형 M&A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애플과 노키아, 퀄컴 등은 최근 매물로 나온 인터디지털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인터디지털은 약 8,800건의 IT 특허를 보유한 이른바 '특허 괴물'로, 삼성전자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리서치인모션(RIM), HTC 등 굴지의 IT 기업들과 3세대 무선통신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당초 가장 유력한 매수자는 구글이었다. 하지만 구글이 모토로라 휴대폰 제조부문을 전격 인수하면서 인터디지털 인수전에선 빠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다음 주로 예정됐던 인터디지털 입찰은 인수 참가 기업들이 추가 검토 시간을 요청하면서 미국 노동절인 다음 달 5일 이후로 미뤄진 상태. 구글 역시 아직까지는 철회 의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어 인터디지털의 몸값은 계속 뛰고 있다.
한때 '카메라의 제왕'으로 불리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이스트만 코닥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이유는 코닥 그 자체가 아니라,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많은 특허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적 재산 전문 투자은행인 MDB캐피털은 코닥이 보유한 디지털이미지 기술 특허의 시장가치를 30억 달러로 추산했다. 이는 코닥 주식 가치(6억 달러)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코닥의 인수 후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MS, 구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코닥의 인수의향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M&A에도 적극 나서라"고 주문한 점을 감안할 때 인수전 참여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의 적기 대응에 실패하며 고전 중인 노키아와 캐나다 림(RIM)도 M&A 대상에 올라 있다. 노키아는 올 들어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주가가 45% 가량 폭락한 상황. 그 만큼 몸값이 떨어진 셈이다. 노키아는 모토로라를 압도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휴대폰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노키아가 매물로 나오기란 쉽지 않겠지만, 미국 투자기관인 모건 키건의 태비스 매코트 애널리스트는 "MS의 인수 대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은 이미 포괄적인 제휴 관계를 갖고 있는 데다 풍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키아"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메신저 시스템에 강점을 갖고 있는 림도 M&A 후보군이다"고 분석했다. 캐나다 휴대폰 제조업체인 림도 최근 블랙베리의 시장점유율 급락으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에선 앞으로 IT산업의 M&A바람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한이봉 M&A 전문 변호사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 동안 '문어발식 성장'이란 정서에 밀려 M&A 보다는 연구ㆍ개발을 통한 특허 획득에 주력해 오는 바람에 글로벌 특허 전쟁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온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M&A는 더 공격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