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45세의 한 스님이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 정착했다. 그는 세탁소에 취직해 밥벌이하면서 한국불교를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라운대 학생들이 그의 설파에 매료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관한 소문은 하버드대 예일대 등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 학생과 교수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그가 바로 한국 선사로는 최초로 서양에 건너가 해외 포교에 앞장선 숭산(嵩山ㆍ1927~2004) 스님이다. 그는 36개국에 120여개 선원을 설립했고,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유명한 현각 스님과 대봉(계룡사 무상사 조실), 무량(LA 태고사 주지) 스님 등이 그의 제자다.
'세계는 한 꽃(世界一花)'이라는 숭산 스님의 법어에 한국 최대 불교 종단인 조계종이 화답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최근 제33차 종무회의를 열고 '미국 동부 해외특별교구(미 동부교구)' 설립을 승인했다. 9월 초 정식 출범하는 미 동부교구는 외국의 지역 포교를 전담하는 조계종의 첫 해외특별교구다. 뉴욕과 뉴저지, 뉴햄프셔 등 미국 동부 16개 주와 온타리오, 퀘벡 등 캐나다 동부 6개 주를 맡는다. 현재 이 지역에는 뉴욕 불광선원, 원각사, 청아사, 뉴저지 원적사, 혜안정사 등 30여개 사찰, 50여명의 스님이 수행과 포교에 힘쓰고 있다. 미 동부교구 설립으로 이 지역에서 포교교육 등을 종단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해주게 된다.
미국 내 불교신자는 이미 200만명을 넘는다(미국 통계국 2007년 기준). 명상 등 신앙 외 목적으로 불교를 접하고 있는 수련자까지 합치면 2,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달라이 라마로 상징되는 티베트 불교나 대만과 일본, 베트남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9년부터 미국에서 한국 불교 포교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불교국제네트워크 대표인 정범 스님은 "미국에서 한국 불교의 존재는 아직 미미하다"며 "종교학술대회에서는 한국 불교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서점에서도 티베트나 일본 대만 불교에 관련된 책만 있을 뿐 한국 불교를 다룬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휘광, 법안, 도안, 무량, 혜민, 설주, 일담 등 뜻 있는 스님들이 개인적으로 해외 포교에 나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지금까지 종단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은 거의 없었고, 외국인 신자 수는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사 등에서 매년 체류 경비를 지원해가며 미국 대학생을 초청해 대만 불교를 전파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요즘 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 불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정범 스님은 "기계적이고 직무적인 일본의 선 수행과 달리 한국 불교의 참선 수행은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워 개인주의적 전통이 강한 미국인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미국 외에 유럽과 아시아 포교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당장 자승 총무원장은 9월 27일~10월 3일 프랑스 파리와 떼제 등지를 돌며 한국 불교를 알릴 예정이다. 총무원 관계자는 "불교신자 수가 1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유럽의 대표적인 불교 번성 국가인 프랑스 파리에서 법회를 열고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불교를 알리겠다"며 "K-Pop 열풍에 이어 K-부디즘(Buddism)이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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