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분쟁을 마지막으로 판단하는 최고 법원이다. 정책법원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판결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대법원 판결에는 필연적으로 대법관의 가치관이 반영된다.
법관 일색, 다양한 가치관 난망
다수의견에 따라 결론이 나지만 그 결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대법관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면 과거의 소수의견은 오늘의 다수의견이 되어 결론이 바뀌는 것이다. 그만큼 대법관의 가치관은 결정적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해야 한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대법원을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대법관들로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법관 14명은 경력법관 출신 12명, 검사 출신 1명, 법학교수 출신 1명으로 구성돼 있다. 법학교수 출신 대법관도 원래 법관이었으므로 대법원은 법관 출신이 압도적 다수이다. 그나마 있던 변호사 출신 1명의 자리는 어느새 없어져버렸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나와 오직 한 길만을 수십 년 걸어온 법관에 의해 대법원이 구성되어 있으니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하기란 당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수의견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소수의견이 담긴 대법원 판결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재판관 15명이 법관 출신 6명, 변호사 출신 4명, 검사 출신 2명, 행정관료 출신 2명, 법학교수 출신 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대부분 연방항소법원 등의 법관 출신으로 임명되더라도 변호사 중에서 임명되기 때문에 그들의 판결에는 다양한 실무 경험이 반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2005년 1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대부분의 대법관이 경력 많은 고위 법관 중에서 임명되어 대법관의 지위가 법관 승진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관료주의의 폐해가 나타나고 법관의 독립이 훼손될 수 있으며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대등한 위치에서 전원합의체를 구성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음을 지적하고 각계각층의 이해가 반영될 수 있도록 대법원의 구성을 보다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끝내 추진하지 못했다.
2008년에는 대법원 구성이 너무 법원 일색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처음으로 대학교수 1명을 대법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법관에 변호사 출신과 행정관료 출신이 한 명도 없는 상황은 우리 사법부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대법관은 정책 판단을 내리는 심판자이지 결코 법관의 최고 승진자가 아니다. 그래서 대법관은 고도의 법률지식을 가진 법관보다는 다양한 실무경험을 가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넓은 안목에서 구체적 사안을 판단할 수 있는 경륜을 가지고 있는 법조인이면 된다.
대법원은 하급법원에 사회경험이 풍부한 법관이 재판을 진행하여 보편적 사회가치가 반영되면서 건전한 법감정에 부합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는 재판이 가능하고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인권의식을 바탕으로 기본권 보장에 충실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법조일원화를 앞으로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임 대법원장은 기득권 버려야
그럼에도 정작 대법원이 법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대다수가 법관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대법원장이 경력법관을 대법관으로 제청해온 기득권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후진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난감하다.
곧 임명되는 새 대법원장은 과감히 대법원의 구성을 다양화해 대법원 판결에 여러 가치관이 살아 숨쉬면서 자유 평등 정의가 실현되는 사법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창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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