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흑백 대결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흥행카드다. 인종 차별주의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이 챔피언의 자리를 놓고 분투하는 장면은 관중들의 심장을 두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포츠 흑백 대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복싱이 꼽힌다. '피 튀기는' 야만성을 그대로 노출하기 때문이다. 인종주의가 극심하던 1900년대 초. 흑인들은 '감히' 백인들에 맞서지 못했다. 하지만 1908년 당시 헤비급 세계챔피언 토미 번즈가 흑인 도전자 잭 존슨을 링으로 불러들이면서 사상 첫 흑백 대결이 펼쳐졌다. 결과는 존슨의 일방적인 KO승. 존슨은 사상 첫 흑인 챔피언에 올랐으나 돌아온 건 백인들의 저주뿐이었다.
복싱에 비하면 육상은 신사적인 흑백 대결장이었다. 완전무결하게 폭력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육상은 오직 기록으로 말한다. 인종주의 색안경을 쓰고 선수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m트랙에서 흑인과 백인이 나란히 달리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풍성한 볼거리다. 그러나 육상에서 흑백 대결이란 말은 1980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흑인들이 트랙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흑백 대결이란 말은 '흑흑 대결'로 바뀌어야 마땅하다.
백인들의 100m 전성시대도 있었지만 기간은 32년에 그쳤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부터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까지 8개 대회 연속 100m를 장악했을 뿐이다. 육상계에서는 "당시는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제약이 많았던 때라 공정한 흑백 대결로 보기에는 무리다"고 평하고 있다.
흑인들은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흑인들은 에디 툴란(미국)의 100m 금메달을 신호탄으로 트랙을 검게 물들였다. 블랙파워는 48년 런던올림픽까지 챔피언자리를 굳게 지켰다. 백인들은 52년 헬싱키올림픽부터 60년 로마올림픽까지 3개 대회를 석권, 잠시 '트랙 정권교체'를 이뤘다. 하지만 백인들은 72년 뮌헨올림픽과 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끝으로 더 이상 100m 올림픽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다.
1983년 시작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레이스는 아예 백인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흑인들은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회까지 12회 연속 금메달은 물론 은메달과 동메달까지 휩쓸었다.
챔피언 자리뿐만 아니라 100m 기록경신도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짐 하인즈(미국)가 1968년 멕시코올림픽을 통해 흑인으로서 10초 벽을 처음으로 허물었지만 백인은 크리스토프 르메트르(프랑스)가 2010년에 와서야 9초98을 찍어 흑인들보다 42년 뒤져 '9초 클럽'에 가입했다. 르메트르는 올 시즌 9초92로 기록을 앞당겼지만 역대 순위로는 200위권 밖이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 출전하는 9초대 선수가 즐비한 가운데 르메트르의 최종 결선진출마저 장담하기엔 이르다. 르메트르에 앞서 백인으로서 아민 하리(독일)와 마리안 워로닌(폴란드)이 각각 58년과 84년 정확하게 10초에 골인한 바 있다. 하리의 기록은 그러나 트랙 경사가 11cm에 달해 당시 허용치인 10cm를 넘었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리는 60년에도 10초를 찍었으나 이번에는 부정출발 시비에 휘말렸다.
한편 황인종으론 이토 고지(일본)가 98년 세운 10초00이 역대 최고기록으로 남아있다.
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이재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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