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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바다라는 이름의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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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바다라는 이름의 약

입력
2011.08.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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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탔습니다. 사실 그날 아침에는 오래 괴롭혀온 두통 때문에 병원에 갈 작정이었습니다만 '바다', '섬'이라는 후배의 말에 혹하여 행선지를 거제 칠천도로 바꿨습니다. 저에게 어린 시절부터 바다는 좋은 약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아픈 병은 바다에 나가 바닷바람을 실컷 맞고 오면 저절로 치료가 되었습니다.

콧물을 훌쩍거리다가 바다에 다녀오면 씻은 듯이 나아버리는 일은 지금까지 경험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두통약을 넣어갈까 망설였지만 바다라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러 가는데 무슨 약이 필요 있을까 싶어서 걱정 없이 그냥 떠났습니다. 진해 괴정포구에서 연안복합 어선을 탔습니다.

칠천도는 자주 다니던 섬인데 시속 25노트의 빠른 배는 불과 20여분 만에 우리 일행을 칠천도 인근에 낚싯줄을 내리게 했습니다. 그곳이 도다리가 잘 잡히는 곳이라, 외줄낚시에 3개의 바늘을 달아 내리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입질이 옵니다. 보리멸이 줄줄이 올라오고 도다리도 뒤따라 올라오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후배는 제 두통이 걱정인지 자꾸 물었지만 사실 두통은 바다를 쾌속으로 달릴 때부터 씻은 듯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역시 바다는 내게 가장 좋은 병원이며 가장 좋은 약이라는 것에 즐거워하며, 연신 올라오는 싱싱한 바다의 선물에 8월의 태양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는 줄 모른 채 행복했습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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