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뮤지컬의 비결은 19세기 런던에 있다?'
최근 영화를 무대로 옮긴 무비컬, 친숙한 대중가요를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등 창작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뮤지컬의 대세는 서양의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다. 뮤지컬 붐을 몰고 온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시대극이 라이선스 뮤지컬의 주류로 자리잡은 것은 물론, 해외 고전을 차용한 시대극 형식의 창작 뮤지컬도 등장했다.
고전의 낭만성을 선호하는 관객들
뮤지컬 전문가들은 시대극의 인기 배경으로 고전 문학의 낭만성을 선호하는 한국 관객의 취향을 우선 꼽는다. 뮤지컬평론가 조용신씨는 "한국 관객의 취향은 TV드라마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에서 그대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현대를 다루지만 출생의 비밀 등 극단적인 설정의 고전적 뼈대를 갖고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컨대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을 옮긴 라이선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1885년 런던을 배경으로 인간의 선악을 약품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의사 헨리 지킬의 극단적인 상황을 그린다. 2004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히 재공연된 장기 흥행 뮤지컬이다. 올해 공연은 28일 폐막한다.
고전이 주로 다루는 신과 인간의 대결,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 등의 극단적인 상황은 뮤지컬에 기대하는 낭만성과 접점을 찾기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소소한 일상사에서 비롯되는 현대사회의 비극성은 아무래도 심리극 형식의 연극 소재로 더 어울린다.
시대가 영웅을 원한다
시대극 뮤지컬의 상당수가 영웅담을 다루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6일 개막한 '셜록 홈즈'는 창작 초연인데도 1주일 만인 지난 주말 객석 점유율 100%를 기록했다. 연출과 대본, 작사를 도맡은 노우성씨는 "정의를 향한 열정과 뜨거운 가슴은 부족하지만 무뚝뚝하고 냉철하며 가슴보다 머리가 뜨거운 셜록 홈즈야말로 21세기형 영웅이라고 생각했다"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진실을 밝혀 세상을 구하는 의미보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조금 더 관심을 갖는 캐릭터라는 점도 흥미로웠다"는 설명이다.
제작사 레히는 내년 여름에는 홈즈와 비슷한 시기의 인물인 살인마 잭과의 가상대결을 그린 2편을, 2013년에는 괴도 뤼팽과 홈즈가 맞붙는 이야기로 3편을 선보일 예정이다.
11월에 국내 초연하는 하반기 기대작 '조로' 역시 위기에 빠진 민중을 구하는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의 영웅 이야기다.
배우 의존도 높은 뮤지컬의 흥행
특히 영웅 이야기는 배우를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흥행의 상당 부분을 특정 배우들에 의존하는 한국 뮤지컬계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킬 앤 하이드'와 14일 막을 내린 '잭 더 리퍼' 등의 인기에는 여성 관객들을 매료시킨 남자 주인공의 극적인 다중 인격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주연 배우가 멋져 보이는 극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일종의 캐릭터쇼를 선호하는 관객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처럼 진짜 역사 이야기가 아닌 소설이나 영화에서 인기를 누려온 가상의 캐릭터들을 내세운 시대극 뮤지컬은 시각에 따라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며 "뮤지컬계는 현실에 안주해 같은 공식만 반복할 게 아니라 관객의 취향을 다양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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