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량 비상이다. 끝없이 내리는 비도 문제지만, 구름 낀 우중충한 날도 많아 농작물이 좀처럼 햇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생육과 작황에 빨간 불이 켜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청제(祈晴祭ㆍ고려ㆍ조선시대 입추가 지나도 장마가 계속될 때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라도 지내야 할 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자칫 태풍이라도 하나 더 오는 날에는 작년처럼 쌀 흉작과 배추대란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16일 기상청에 따르면 중부지역의 7월 한 달간 일조량은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메아리'와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급감했다. 충남 보령이 지난해(151.0시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83.8시간을 기록한 것을 비롯, 수도권과 강원ㆍ충청 지방 일조량이 10.5~44.5% 감소했다. 7월 일조량이 지난해와 엇비슷했던 영ㆍ호남 지방도 이달에는 태풍 '무이파' 등의 영향 등으로 3분의 1수준(15일 현재)에 머무르고 있다.
가장 걱정 되는 건 주식인 쌀이다. 농수산식품부는 일조시간이 부족해 쌀 생육이 지연된 건 사실이지만, 중간 관측결과는 평년과 비슷해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가 이달 1일 관측한 바에 따르면 벼 1포기 당 이삭 수가 19.4개로 평년(19.3개)과 비슷했고, 이삭 당 낱알 수는 82.7개로 평년(79.7개)보다 3.7% 증가했다.
쌀 전문가들은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다. 7월 하순~8월 초 이삭이 나오는 조생종 벼는 전체 재배 면적의 10%에 불과해 큰 영향이 없지만, 나머지 중생종과 중ㆍ만생종은 중ㆍ하순에 이삭이 나오기 시작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농민들은 구름 낀 흐린 날이 지속되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보통 하루 일조량이 6~7시간 정도 돼야 낱알이 여물어 꽉 차는데, 지금처럼 일조시간이 줄어들면 쭉정이가 많아져 생산량이 그만큼 감소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태풍은 치명적이다. 벼 잎사귀가 찢어져 광합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영양소 공급이 불가능하다. 만일 태풍이 한 차례 더 한반도에 엄습한다면 작년 9월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전년보다 12.6% 급감한 흉작이 반복될 우려가 크다.
채소의 대표 품목인 배추도 햇볕을 학수고대하기는 마찬가지. 김장김치 등으로 공급되는 가을배추는 곧 묘목을 심어야 하는데, 토양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때만 기다리고 있다. 원예특작과학원 박수형 농업연구사는 "비 온 뒤 5일 정도 맑은 날이 지속돼야 토양이 고슬고슬해져 퇴비 등을 뿌려 밭을 만드는데, 그런 날이 아직 없어 8월 중순부터 심어야 하는 강원 정선 등이 손을 놓고 있다"며 "토양에 수분이 많으면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생육에도 지장이 있다"고 걱정했다.
추석 성수기를 앞둔 대표 과일 배와 사과도 걱정이다. 배는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주산지인 전남 나주의 피해지역 낙과율이 15%나 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당초 배 생산량이 1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평년작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태풍 피해가 적은 사과도 앞으로 일조량이 계속 부족하면 당도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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