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검은 옷의 사람들 밀려 나온다. 볼펜을 쥔 손으로 나는 무력하다. 순간들 박히는 이 거룩함. 점점 어두워지는 손끝으로 더듬는 글자들, 날아오르네. 어둠은 깊어가고 우리가 밤이라고 읽는 것들이 빛나갈 때. 어디로 갔는지. 그러므로 이제 누구도 믿지 않는다.
거기 가장 불행한 표정이여. 여기는 네가 실패한 것들로 가득하구나. 나는 구겨진 종이처럼 점점 더 비좁아지고. 책상 위로 몰려나온 그들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그러니 불운은 얼마나 가볍고 단단하지. 지금은 내가 나를 우는 시간. 손이 손을 만지고 눈이 눈을 만지고, 가슴과 등이 스스로 안아버리려는 그때.
● 몇 분 후면 좋은 주말이 막 시작되려는 밤인데, 편치만은 않을 때가 있어요. 전속력으로 한 주를 달려왔지만 결과는 어쩜 이리 보잘것없는지. 누구도 믿을 수도 없고 어디도 의지할 데가 없는 그런 밤. 시인은 무섭고 외로워 거울이라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의 위로도 가끔은 괜찮습니다.
너무 아파서 혼자만 깨어있는 밤, 거울을 보면 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찡그린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게 문득 우스워지곤 했어요. 그게 위로가 되었어요. 혼자 얌전히 제 몸을 만져보기도 합니다. 내 손에 닿는 내 몸의 감촉. 이 팔과 다리가 사라진다면, 그땐 내가 숱하게 짓던 슬픈 표정들이 다 어디로 갈까.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나만이 나를 위해 쓰다듬고 울어주는 밤을 지새우고 나면, 주말 아침은 한결 홀가분하게 오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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